금방 다시 괴로워지는 마음 (하나님 임재 연습)

한 줄 묵상 2014.12.11 02:31

내가 더 우선적으로 여기는 것은 가능한 한 자주 그분과 함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으로 물러나 앉아 있는 것이라네. 그분과 함께 거기 거할 때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네. 하지만 일단 그분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기만 하면 나는 금방 괴로워진다네.

-로렌스 형제(1605-1691)지음, 윤종석 옮김,하나님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서울: 두란노, 2000), 41.


미국 미용실 서비스는 한국과 비교하면 형편이 없다. 그래서 종종 한국의 미용실이 그립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다 된다. 머리는 단정하게 깍이고, 알아서 머리를 감겨주며, 젖은 머리를 정성스럽게 말려주고, 평소에는 꿈도 못 꿀 헤어스타일로 멋을 내준다. 가만히 눈을 감고 즐거운 상상을 하거나, 피로에 깜빡 졸다 보면 어느새 모든 것이 다 끝나 있다.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우리는 종종 기도의 자리에서 그런 서비스를 받기 원하는 것 같다. 가만 앉아 있기만 하면 슬픔과 괴로움이 평안으로 채워지는 마법 같은 서비스 말이다. 그래서 기도의 자리로 더 자주 나오라는 권고를 듣는 사람은 많지만,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무는 ‘연습’을 지도 받은 이는 드물다. 

평생을 충성스런 평신도 수사로 살았던 로렌스는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 자매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님은 자매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계시는 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님이 아무리 가까이 계셔도 주의 임재는 저절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다. “밥을 먹을 때나 허드렛일을 할 때에도 심령을 그분께 올려 드리십시오.”라는 그의 충고처럼 하찮아 보이는 일을 할 때조차도 우리의 심령을 주님께 올려드리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흔히 ‘의지’는 ‘은총’을 흐리는 불순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의지' 또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이 아니던가! 괴로운 마음으로 털썩 기도의 자리에 앉는다고 저절로 주의 임재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줄 기도자는 주변에 즐비하다. "그분과 함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으로 물러나" 앉는 일은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 없는 기도로는 주님과 함께 머물지 못한다. '금방 다시 괴로워지는 마음'이 그 증거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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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고통에서 건져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라,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 사랑을 위해 결연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 로렌스 형제 (1605-1691) 지음, 오현미 옮김하나님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좋은 씨앗, 2006), 114.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다고 하겠지만 난 군대 생활이 좋았다. 무질서 하던 대학 새내기 생활을 뒤로하고, 규칙적인 삶과 규칙적인 식사 속에서 난 내 몸이 처음으로 건강해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처음 몇 주간은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눈동자 하나라도 흔들리면 바로 장교들이나 고참들의 소리와 물리적인 압박이 가해져 왔다. 훈련소에서 처음 행군 나가서 몇 주만에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던 바깥 세상의 가게며 마을이며, 집들을 보았을 때, 난 처음 탈영을 하고 싶은 강한 유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참아서였는지 용기가 없어서였는지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사격 훈련에 앞서 군기를 잡기 위해서 심한 얼차려를 받았다. 속된 말로 구르고 또 굴렀다. 군복은 흙투성이가 되었고 머리며 코는 흙먼지로 뒤범벅이 되었다. 육체의 한계라는 말이 오래간만에 생각나는 날이었다. 무사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땀투성이, 먼지 투성이가 된 훈련병들을 향해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한 소대장이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 말이 내 군생활을 건강하게 했던 힘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 하루 즐기며 견디었고, 제대할 때에는 난 정말 건강해져 있었다. 


그런지가 어언 20여년이 흘렀다. 신앙의 여정은 언뜻 보면 지루하고 더딘 여정 같지만, 어찌 보면 군대보다 더 힘들고 더 농도 깊은 고통의 시간일 때가 있다. 사람을 알고 세상을 알고 그 속에서 말씀을 붙잡고,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군인보다 더 강한 훈련이 필요하다. 여전히 느끼는 내 모습은 될 수 있는 대로 고통을 피하고 싶고, 두려움에 맞서기를 꺼리는 그런 소심한 나다. 군대에서는 군기가 견딜 수 있는 힘이었다면 세상은 사랑으로 이겨야 한다. 여전히 피하지 말고 감당해야 한다. 그 분을 사랑한다면 기꺼이 맞서야 한다. 그래서 또 무릎 꿇고 그 분 앞에 엎드린다. 


"주님,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 소리벼리 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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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바라보면서 경험할 뿐 (하나님 임재 연습)

한 줄 묵상 2013.12.15 05:04

우리의 영혼이 더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 믿음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고, 마침내 그 믿음이 온 영혼에 스며들어 마지막엔 "이제 나는 더이상 믿지 않습니다. 그저 바라보면서 경험할 뿐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 로렌스 형제 (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Spiritual Maxims, Chapter 7)


로렌스 형제는 영적 격언의 마지막 장인 7장에서 하나님 임재 연습의 유익을 알려준다. 그 첫 번째 유익은 더욱 생생하고 역동적인 믿음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특히 부족함을 느끼는 영역에서 말이다. 자신의 결단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믿음, 자신이 부족함을 고백하는 영역에 주어지는 그 믿음은 은총이다. 그 영혼은 하나님의 임재를, 아니 하나님을 그저 바라보면서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원래부터 있었던 사랑을 알고 답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부족한' 영역은 더 선명히 드러난다. 그 자리로, 곧 내 삶의 마굿간 구유에 주님이 오시길 기다린다. 하나님의 사랑, 그분이 오실 때, 해석하거나 믿으려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바라보면서 경험할 수 있길 소망하며 기다린다. ……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시편 46:10)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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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시니 (하나님 임재 연습)

한 줄 묵상 2013.09.28 15:37

오직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기를 연습하고 경험하는 이들만 이 교제가 얼마나 달콤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기쁨을 얻기 위해 하나님 임재를 연습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 연습을 통해 자기 위안을 추구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분이 이 끊임없는 대화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원해야 할 것입니다.

- 로렌스 형제 (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Second Letter)



기도의 맛과 경험은 소중하다. 많은 이들에겐 '그때처럼'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시점과 경험이 있다.
 과거의 그 경험은 때론 영적 열망을 일으키는 동기가 되기도 하고 때론 현재의 영적 나태를 발견하게 만드는 하나의 기준적 경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그 '경험'을 내 것으로 삼고, 그 자체에 매여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도 만나게 된다. 


로렌스 형제는 그 맛을 위해 기도하지는 말라고 권면한다. 기도 안에서 초점은 대화의 자리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현존이 우리의 기도 행위를 '대화'가 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기도의 행위 안에 하나님을 분명 모신다면, 그분이 우리의 대화를 그리고 그 모든 '나머지'를 인도하실 것이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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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임재 연습)

한 줄 묵상 2013.05.09 10:21

영적 삶에 있어서 가장 거룩하지만 동시에 일상적인 꼭 필요한 실천은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기뻐하고, 그분과 함께 지내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모든 순간에 어떤 식으로든 그분께 겸손하게 말하며 사랑으로 대화하면서 말이다.
-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Spiritual Maxims, Chapter 2.)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 임재 연습이란 가장 거룩하지만 동시에 매우 일상적인 영적 훈련이라고 말한다. 가장 거룩하면서도 일상적이라는 말은 모순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는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하게 되는지도 가르쳐준다. 그저 매순간 자신의 마음 안에 일어나는 생각과 뜻 그 모든 것을 하나님과 나누는 것이다. 거기엔 특별한 기도 문구나 매개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소한 즐거움이나 작은 투정, 때론 넘쳐나는 기쁨이나 깊은 절망도 내 좁은 생각에 묶어 두지 않고, 그저 주님께 가져가면 그것은 거룩한 것이 된다. 그분과의 대화 안에서 우리 안의 모든 것이 거룩해질 수 있다. 작은 것 하나라도 혼자 감당하거나 다루려하지 않는 사랑과 겸손의 마음에 그분은 언제나 즐겁게 동행해 주시며 응답해 주신다. 


거룩하신 그분과의 접촉 때문에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의 평범함도 거룩함을 입게 된다. 사실 이런 낭만이 있기까지 그분은 수많은 대가를 치뤄주셨지만 (우리의 부모님처럼) 우리에겐 조금도 내색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사랑이신 그분과 오늘 조금만 더 이야기해보자. 더 자주 이야기해보자.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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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 연습>

2013년 4월의 추천 고전

하나님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지음 


"우주의 중심은 어디인가요하나님은  하늘에 거하시나요?"

"무엇 때문에 우리가 짧은 순간의 경배로만 만족해야 하겠는가?" (34)

     질문은 하나님을 향한 열망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짧은 경배의 순간으로 끝나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이들이 되물었던 질문이다. 쉬지않고 기도하며 예배하고자 했던 많은 이들은 질문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소망을 키워갔다. 그러나 고백이 자주 드려지던 장소, 예배나 기도의 처소를 벗어나게 되었을 그래서 일상의 자리에 발을 딛기 시작하는 순간에 질문은 희미해져버린 경우가 많았다. 때론 많은 이들이 그것은 불가능한 소망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일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구별지으며 (?) 살아간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일상의 가운데 지속해간 사람들의 낯선 이야기는 반가움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그것이 젊은 청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일상을 통해서 도리어 깊이 하나님의 현존을 누린 사람에 관한 것이라면 이해되지 않는 불만마저 생겨날지 모른다. 젊은 날에 꾸었던 이젠 접어둔 꿈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순간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누리고 있는 이를 직접 만나 대화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있다. 나아가 그가 누구나 하나님 임재를 지속할 있을 아니라 방법이 매우 쉽고도 단순하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다시금 꿈을 있을지도 모른다이것이 로렌스 형제가 하나님 임재 연습이 우리 마음을 지속적으로 끌어당기는 이유일 것이다.

    로렌스 형제는 상처로 인해 의가사 제대를 하게 파리로 갈멜 수도원의 평신도 수사가 되었다. 그곳에서 니꼴라 에르망라는 본명 대신에 로렌스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로렌스 형제가 담당했던 일은 부엌에서 요리와 설겆이를 하는 것이었고 다양한 허드렛 일이 그의 주요한 과업이 되었다. 그러나 가운데에서도 (도리어) 일을 통해 깊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일거리들이 하나님 임재의 장애가 것이 아니라 일상을 통해 천상의 하나님을  깊이 누리는 비밀을 알게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단순히 자신에게 맡겨진 일상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그는 고백한다.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인간이 있는 훈련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가장 거룩하고 가장 필요한 연습은 하나님의 임재 연습입니다. 말의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동행 안에서 끊임없이 기쁨을 발견하고, 매순간 어떤 식으로든 대화의 막힘이 없이 항상 그분과 겸손하면서도 정답게 이야기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특히 유혹과 슬픔의 시간,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같은 시간, 그리고 불성실과 범죄의 시간에 더더욱 중요합니다." (77)

그는 하나님 임재를 위한 연습과 훈련의 길을 제시하면서 그것이 마치 몸에 습관처럼 되게 하라고 가르쳐준다. 그리고 꾸준한 연습을 통해 주님을 향한 끊임없는 지향이 본성의 일부가 되도록 것을 권면해준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 가장 한가운데로부터 우러나오는 겸손하고도 거짓없는 사랑으로 그분을 예배해야만 합니다.) ... 우리는 그것(예배) 우리 본성의 일부가 때까지 반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영혼과 하나가 되시고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하나가 때까지 말입니다. 그것은 꾸준한 연습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82)

"이것도 하나의 습관이기에 몸에 배기까지는 쉽지 않지만 한번 습득되고 나면 거룩한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89)

   그가 하나님 임재의 연습을 대화와 서신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권면할 있었던 것은 그의 몸과 안에 깊이 새겨진 경험적 확신 때문이었다. 마치 관성처럼 하나님을 향한 지향과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는 잠자는 시간에도 이어졌고, 계란 프라이를 뒤집는 순간에도 지속되었다. 그는 일상의 과업들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안에서 행하기를 소망했으며, 그것들을 순결한 사랑의 행위로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의 실천적 가이드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지향하고 대화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연습의 근본적 바탕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이다. 그는 "그분을 향한 순전한 사랑만이 삶의 모든 원동력입니다."(48)라고 고백하였다. 일상의 과업 자체보다 하나님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항상 그를 이끌었다. 일상 가운데 종종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일상이 하나님을 찾아 살아가는 자체가 되기를 소망했다. 하나님 임재를 향한 열망이 그의 삶의 모든 자리를 채웠고 그가 순전한 열망으로 일상을 감당할 하나님은 그의 중심에 자리잡으셨다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자리는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을 깊이 인정하고 누리는 것이 하나님 임재 연습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지 정확히 모른다. 많은 이들이 하늘 어딘가에 그분의 자리를 가정하며 그분의 임재를 가끔씩 생각한다. 그리고 지향한다. 그러나 모든 순간을 하나님 임재로 살아간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자리가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임을 알았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아주 친밀한 분으로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만 하면 된다." (26)

 "그분은 ,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계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제게는 하나님을 향한 놀라운 경외심이 일었으며, 저는 오직 믿음으로만 만족을 누릴 있었습니다." (46)

    언젠가 나의 자녀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떨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가 지구의 중력 때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순간 나는 지구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 생각해보게 되었고우주의 무한성 안에서 어디가 우주의 위이고 아래이며 오른쪽은 어디이고 왼쪽은 어디인가에 대해 생각이 닿게 되었다사실 우주는 앞뒤 좌우가 없고, 아래가 없다우리가 하늘이 위에 있다고 생각하며 하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경험적으로는 극히 천동설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일지 모른다지구 반대편 아니 지구 아래 편에서 중력에 의지하여 매달려있는 그들의 하늘은 어디이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하늘 편에 자리를 펼치시고 계실 하나님은 우리 좁은 사고의 하나님이실 뿐이다.

   우리는 지구에 매달려 붙어있는 존재가 아니며 하나님도 어느 하늘 한편에 계실 없는 분이다. 도리어 로렌스 형제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찾는 것이 지혜롭지 않을까그리고 우리의 영적 여정의 모델은 등정의 사다리나 어떤 산이 아니라 이미 우리 중심 가운데 거하시는 그분을 향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로렌스 형제는 우리 마음 가운데 온전히 오신 분을 향한 순전한 사랑으로 살아가면 충분하다고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분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말을 걸고 들을 것을 알려주었다. 그것이 우리 몸에 배고 자신의 일부가 때까지 있다면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이미 계신 분을 넘치도록 고백할 있을 것이다.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 임재 연습은 이미 많은 독자들의 입을 통해 추천되어 오고 있다. 필자 역시 대학시절 책과의 만남을 기억하며 그날에 꾸었던 하나님 임재와 동행의 꿈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로렌스 형제를 다시금 영적 벗으로 맞아들이며 이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여러 독자들과 함께 귀기일 있기를 기대해본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하나님 임재 연습
저자
로렌스 형제 지음 배응준 옮김
출판
규장 펴냄 | 2008.04.28 발간
소개
하나님은 당신의 주인이 되고 싶어하신다! 평생을 평수사로서 수도원의 주방에서 일하면서도 하나님 임재를 끝없이 연습한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 임재 연습』.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기름을 부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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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 안에 계신 주님 (하나님 임재 연습)

한 줄 묵상 2013.04.09 14:58

모든 순간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그분의 도움을 간구하기 위해서는, 오직 주님이 우리 안에 와 계시다는 것을 (깊이) 깨닫기만 하면 됩니다.
-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Fourth Conversation)


로렌스 형제는 주님이 이미 자신 안에 계시다는 인식 속에서 살아갔다. 그것이 그의 영적 삶의 전체이자 전부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의 현존이 그가 만지고 관계맺고 경험하는 모든 일상을 거룩하게 한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경험했다.  미미 있는 일상이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자리가 있었던 것은 주님의 현존 때문이었다.

더불어 그는 예수님의 임재를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은 완전한 복종과 자아의 포기라고 알려준. 생전에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 불리셨던 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죄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들의 마음에 임하시기를 즐겨하신다. 로렌스 형제에게 있어서 자신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집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은 스스로를 세리와 죄인과 같다고 고백하는 자아의 포기에 달려있었다. 그리고 주님으로만 더불어 먹고 마시기를 기뻐하는 마음에 주님은 임하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성육신하셔서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오시고  가장 가난한 마음의 자리를 찾으셨던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는 이들에게 즐겨오신다. 원래 그러셨던 분이셨고 그렇게 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그분에게까지 올라오라고 명하시기보다 스스로 우리의 자리까지 내려오시길 선택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육신하신 주님은 일상을 살아가는 지금의 내 마음에라도 충분히 내려오실 있는 분이시다. 그렇게 하셔서 기도의 자리와 일상의 자리 사이의 경계를 파괴하시고 오늘도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고자 하신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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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버린 관계 (로렌스 형제)

한 줄 묵상 2013.03.05 02:08

우리는 내면을 향해 돌이켜야 합니다. (막힌) 댐들을 무너뜨리고, 은혜가 흘러들어와 잃어버렸던 시간을 보상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죽음은 우리 가까이 있으니 늘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 왜냐하면 영적인 삶에서는 진보하지 않는 것이 곧 뒤로 물러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로렌스 형제 (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First Letter)



(로렌스 형제의 글에서 이런 강한 어조를 듣게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내 그가 다른 이들을 자신이 경험하고 살아내고 있는 삶으로 간절하게 초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영혼 깊숙한 곳에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했으며, 그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내면을 향해 헤엄쳐 들어갔다. 모든 분주한 외적인 일들 가운데에서도 (아니 그 일들을 통하여) 더 깊이 잠영해 들어갔다.  로렌스 형제에게 있어서 영적인 삶은 내면에 거하시는 하나님과 자기 영혼과의 관계였다. 그리고 그분과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그저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뒤로 물러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우디 앨런 감독은 그의 작품 애니 홀<Annie Hall>에서 모든 관계는 상어와 같아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죽게 된다고 말했다. 상어는 그 아가미의 구조 때문에 전진하지 않으면 호흡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상어라는 존재의 전진은 생명과 생존을 의미한다. 비슷하게 관계는 속성상 점점 더 자라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주 어색한 일종의 죽은 상태가 되어 버린다. 영적인 삶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일종의 죽어버린 관계를 화석처럼 남겨두고 있지는 않을까?


로렌스 형제는 그렇기에 생애의 죽음 이전에 이 관계의 진전을 이뤄내라고, 또 그것에 집중하라고 권면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더 깊은 관계로 진보하지 않는 것은 어색한 또 하나의 죽어버린 관계를 낳는 비극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로렌스 형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이라도 다시 님이 계신 내면을 향해 돌이켜야 합니다. 다시금 막힌 것을 무너뜨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아있는 그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습니다." 작은소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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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한 간구 (하나님 임재 연습)

한 줄 묵상 2012.11.28 08:03
  •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 때는 분위기 살핀 후에 비위를 맞추거나 어려워하며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담대하게 간구하라는 말이네요. 하나님은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므로.

    BlogIcon 바람연필 2012.11.28 14:51 신고
  • 담대하게 은혜를 구하는 것이 진정한 겸손이라는 생각 해봅니다.

    BlogIcon 산처럼 2012.11.29 06:54 신고
 우리는 온전히 담대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들에는 관심을 버리고, 주님의 끝없는 공로만을 의뢰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분의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 로렌스 형제 (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Fourth Conversation)


그리스도인도 담대히 은혜를 구하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하나님과의 동행을 지향하면서도, 환난과 시험 가운데에서는 스스로 해결해나가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마치 다른 사람들에 대해 도덕적으로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듯, 스스로 깨우치고 해결한 뒤에야 주님을 만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벌거벗은 솔직함으로 민낯의 하나님을 대면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로렌스 형제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것이었으며, 그분에 대한 전적인 의존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피조물로서 자기를 보고, 그 겸손 안에서 하나님을 붙잡는 자기 고백적 행위였다.  그가 더 많은 일상의 영역에서 그분의 은혜에 의존했을 때, 그분의 임재를 놓치지 않았고, 놓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을 잊어버리면 그도 하나님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은혜를 주신다는 진리를 잊어 버렸다.  


하나님께 진실로 도움을 구하고 있는 이는 그분을 놓칠 수 없다. 은혜를 구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 이는 그분의 손을 놓을 수 없다. 주님이 먼저 자신의 손을 붙잡고 계셨다는 것을 온전히 알게 될 때까지.  / 작은소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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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더 포기하기 (하나님의 임재 연습)

한 줄 묵상 2012.11.15 06:00
중요한 것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않는 것을 무엇이든지 '한번 더' 포기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주님과의 끊임없는 대화에 (내가) 익숙해지기 위해서 입니다.

- 로렌스 형제 (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Fourth Conversation)


"쉬지 말고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7)"는 말씀은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에게 영적 도전을 주는 동시에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 앞에서 그분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이들은 희망과 좌절의 교차를 경험해왔다. 눈 앞에 닿을 듯한 아름다움인 동시에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아지랑이같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신비로 남아있는 또 하나의 주님의 뜻이다.  


로렌스 형제가 보여준 하나님의 임재 연습에 많은 이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도 그 쉼없는 하나님 임재를 내 것으로 하고 싶은 소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임재를 위해 조금 다른 길을 보여준다. 그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자신 안에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에 맞게 자신을 바꾸어나가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로 내가 나아가는데 방해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한번 더 포기해나가는 것이다. 그 쉼없는 기도에 자신이 적응되어지도록 계속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자기 존재가 하나님 임재의 자리가 되도록, 그리고 자기 영혼이 기도하는 손의 형상으로 조각될 때까지 자기를 드리는 것이다.  / 작은소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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