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지금(리처드 로어)


벌거벗은 지금


리처드 로어 지음 | 이현주 옮김 | 바오로딸 | 2017년



이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시며 예수께서 하신 첫 선포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다. 여기서 “가까이 왔다”는 것은 “이미 왔고, 계속 오고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이 말을 현재에 대한 고도의 깨어있음과 현재에 대한 집중적 축적으로 이해한다. 


요즘 같은 진보된 시간 개념을 가진 우리와 달리, 제자들은 이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제자들은 그들의 전통인 메시야적 종말 세계관에 근거하여 로마제국의 종말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 후의 신자들도 그러했다. ‘하나님 나라’를 -당시 자신들이 가진- 세계 종말론과 연결하고, “언제”와 “어디에”를 더듬는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어떤 해석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자 함이 아니다. 어떤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 그만큼 많은 오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 ‘하나님 나라’를 우리 민족의 내세관과 바로 연결해 이해해 버린 듯하다. 신학적으로 아무리 현재성을 이야기 하고, ‘이미’와 ‘아직’을 학자들이 다 이야기해도, 이 개념은 신자들의 일상에는 아무 힘도 미치지 못하고 마른 잎처럼 맥없이 추락하는 것 같다. - 나는 ‘아직’에 대한 부분은 강조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긴장, 즉 깨어있음이라는 본래적 어법과 다르게 미래적 시간으로 오용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의 시간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없다고 본다. ‘미래’는 인간중심적 해석일 뿐이라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것도 ‘모름’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양산한 시간 개념일 뿐이다.


‘죽은 후 가는 세상’이라는 우리 민족, 혹은 인간 보편의 강력한 내세관 앞에, ‘하나님 나라’는 ‘이미’와 ‘지금’의 나라가 아니라, ‘멀고 먼’ 그리고 ‘이 다음 나중’의 나라로 유보된다. 또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우리나, 혹 우리 다음의 후손까지, 하나님 앞에서 ‘지금 동시적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산 자들’의 나라가 아니라, 죽은 이들만 모여 있는 ‘사후세상’으로 특정된다. 우리는 현재를 충만히 살아있지 못하고, 나중에 갈 그 무엇을 위해, 항상 희생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또한, 현실회피 용으로 사후세계를 들먹인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는 ‘사는 것’으로만 알 수 있고 알려 질 수 있는데, ‘개념’으로 안다고 생각한다. 경험보다 개념을, ‘믿는 행위’보다 소위 ‘믿는 다는 생각’을 더 소중히 여긴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에 그렇게나 강력하게 저항하는 우리 인간의 교묘하고 조직적인 인지체계를 보라! 어떻게든 뒤로 미루고 어떻게든 따로 떼어 놓으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공간과 시간을 구분하는 이원론이 ‘하나님 나라’의 그 충만한 현실을 우리에게서 가만히 도둑질 해 간 모습처럼 내겐 여겨진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붙는 것처럼, 자꾸 채워도 허기지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방식이 이렇게 어처구니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점에서 『벌거벗은 지금』(The Naked Now)은 우리에게 ‘지금, 현재’에 깨어날 필요성을 이야기 해 준다. 특히, ‘지금 현재’에 깨어나지 못하는 일상의 덫들에 대해, 그 이면에서 작용하는 인간 역사 오류의 산물로서의 종교 전통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이현주 목사님의 번역이 너무도 수려해서 한 번에 통으로 읽히는 책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번역에 경탄을 하며 읽었다. 


나는 너무나 단순한 오류에 빠져있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라는 그 이름 부를 수 없는 이름을 우리 인간이 가진 알량한 신지식, 그것도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온갖 아픔과 고통을 투사한 두려움과 불안 해소의 신지식과 연결한다거나, 그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나라’를 단순 사후세계와 그 사후세계의 앞선 도래 정도로 이해하는,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처구니없는 실수들로 인해, 나는 부끄럽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지나치게 과거에 얽혀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고 살았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늘 전전긍긍하면서 불안하였다. 


이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께서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지, 나는 오랫동안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던 하나님 아닌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 너무나 고통 속에서 신음했다. 지나치게 예민했고, 선을 밟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조심했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선을 밟았고, 그 자책이 너무 심했다. 점점 경직되고 잘 웃지 않았고 항상 너무 진지했다. 내가 살아온 세계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그냥 자기중심의 나라였다. 너무나 단순한 오류는 이렇게 도둑질해 갈 수 없는 것을 도둑맞은 느낌으로 살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다. 


이것을 알아챈 순간, 나는 그동안 허송세월을 한 시간이 너무나 억울했다. 밝고 호탕하게 웃어넘길 수 있었던 수많은 순간들, 사랑하기에 조금도 부족함 없는 이름 부를 수 없는 그분과 함께 더 많이 향유할 수 있었던 경이에 찬 생의 순간들, 바보같이 그리고 멍청하게 사기 당할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들, 감사함이 우러나와 깊게 절하고픈 소중하고 고마운 만남들, 그 순간을 향유하지 못했던 자각이 오늘도 다시 나를 일깨운다. 


지금 사랑하지 못하면, 영원히 못한다. 다음은 없다. 지금 하나님과 가까이 못하는데, 나중에는 그럴 것 같은가? 어림없다. 지금이 아니면, 나중도 그 거리는 늘 그 거리다. ‘오늘 기도 못했는데, 이따 해야지’ 할 것 없다. 그렇게 미래로 미루고 계획을 세울 것 없다. 그런 생각이 들면, 지금 바로 해라. 잠깐이라도 하고, 곧 즉시 하나님과 함께 현재를 살라. 리처드 로어도 이렇게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영원은 흐른다. 영적 스승들은 우리에게 지금 그 흐름 속으로, 그러니까 영원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보여준다. 그들의 한결같은 전제는 “지금 그것을 가지면 그때에도 가질 것이다”이다. 그들은 시간과 영원의 완벽한 연결을 본다. 그들이 죽음이나 심판을 겁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이 지금 나를 무조건 사랑하신다면 나중에 그 사랑을 바꾸실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79)


나는 이 책을 신학생들, 목사들에게 먼저 권하고 싶다. 우리는 생생한 체험 없이 신학 책에서 읽은 얄팍한 개념을 가지고 안다고 착각하기 쉽고,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한다고 생각하기 쉽고, 이궁리 저궁리 하느라 머리만 터지도록 바쁜 것을 몸을 놀려 생을 치열하게 사는 줄로 대단히 잘 속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해 영혼을 맡은 이들은 더욱더 ‘지금’에 깨어나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어느 사물에 대한 관념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자기가 그 사물의 실체를 만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관상가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사물을 그 자체 안에서 만나야 한다. 이 ‘만남’을 나는 ‘자금 여기에서 그분과 함께 있음 presence, 현존’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것은 깨달음의 순간을 알고 그것과 만나는 색다른 길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약하고, 우리를 전혀 통제하려고 하지 않는다.”(44) / 해'맑은 우리 주선영

신고
posted by 바람연필

예수처럼, 동주처럼 : 『처럼: 시로 만나는 윤동주』

“예수처럼, 동주처럼”

처럼

시로 만나는 윤동주

김응교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기독교인 윤동주에 대한 책이 있나요?"


      며칠 전 우연히 만난 분으로부터 들은 질문이다. 필자가 신학교 졸업논문으로 윤동주 시인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기신 모양이었다.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윤동주 시인의 이름은 알아도 그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필자가 윤동주의 영성을 공부한다고 말하면, 윤동주를 기독교 영성, 또는 신학의 관점에서 연구할 만한 내용이 있느냐고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질문을 하신 분께 지난 2월 16일이날은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을 거둔 지 71주기가 되는 날이다에 발간된 책을 한 권 소개해 드렸다.


[「돌아와 보는 밤」은] 윤동주의 작품 중 유일한 기도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마태복음 6장 6절)는 말씀처럼 윤동주는 좁은 방에 들어가 '숨은 신'에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좁은 방은 곧 자신의 내면을 응시할 수 있는 기도의 자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가 외면적인 실천의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는 종교시라면 「돌아와 보는 밤」은 내면적 성찰이 돋보이는 기도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숨은 신과 대화하며 사상이 익어가는 기다림은 은밀하고, 숨은 신과 인간의 일대일 만남에서 이루어집니다. ……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서 헌신을 다짐하는 키에르케고르와 윤동주의 공통된 삶의 자세를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 김응교, 『처럼: 시로 만나는 윤동주』(파주: 문학동네, 2016), 354쪽.


 

     보다 정확히 말해서 『처럼』은 "기독교인 윤동주"에 대해서만 쓴 책이 아니다. 윤동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과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독교'라는 관점에서만 윤동주를 이해하고 소개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시인의 단면만을 보는 것이거나, 그를 '기독교 교리' 또는 '제도로서의 기독교'라는 '틀' 속에 가두게 될 위험이 있다. 대신 이 책의 저자 김응교 교수는 가능한 다양한 관점에서 윤동주 시인을 소개하려 하고 있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적, 지리적, 문화적 환경은 물론이고 그가 교유했던 벗들과 읽었던 책들을 통해서 윤동주라는 한 인물을 종합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학부에서 신학을 전공한 저자는 위의 인용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윤동주의 삶과 작품에 나타난 기독교적 의미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의 대부분의 장들은 저자가 기독교 월간지『기독교사상』에서 2013년 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윤동주와 함께 걷는 새로운 길"이라는 꼭지로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고쳐 쓴 것이다. (또한 저자가 학술지에 기고한 논문들을 학자가 아닌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서 다시 쉽게 풀어 쓴 글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처럼』은 "기독교인 윤동주"에 대해서 가장 잘 소개하고 있는 책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처럼"이라는 독특한 제목이 윤동주의 기독교 신앙과 영성을 핵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제목은 윤동주의 유명한 시 「십자가」에서 가져온 것으로 저자는 책의 맨 처음과 마지막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처럼'이란 조사만 한 행으로 써 있는 시를 본적이 있나요. ……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윤동주는 알고 있었어요. 그 귀찮은 길을 '행복'한 길이라고 그는 씁니다. 타인의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그 고통을 나누는 순간, 개인도 '행복'한 주체가 되는 그 길을, 윤동주는 택합니다. (5쪽)


그는 '처럼'의 시인이었습니다. 국익이라는 헛것으로 보편성을 강요하는 파시즘 시대에 윤동주의 문학은 만들어진 보편성에 흠집을 내고 그 한계를 깨뜨리는 저항의 언어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문학은 친일 문학 같은 굴레에 갇힐 수 없었습니다. 문학은 한계와 제약으로 구속해서는 안 되고, 구속할 수도 없다는 자유에 그는 목숨을 걸고 있었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조용히 흘릴 희생을 각오했고, 그 결단의 순간을 위해 그는 늘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서시」)며 다짐하며 살았습니다. (509쪽)


기독교 영성사에서 '제자도'(discipleship), 또는 '그리스도를 본받음'(imitatio Christi)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기독교적 삶의 본질적인 이상의 하나로 여겨져 왔다.[각주:1]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 급진적인 삶을 살았고, 어떤 이들은 순교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삶과 목숨까지 바치려 했던 윤동주 시인의 영성은 기독교 영성의 한 오랜 흐름에 맞닿아 있다. 『처럼』은 이러한 제자도를 윤동주 시인의 삶과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로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파시즘과 제국주의 시대에 예수처럼 살고자 했던 윤동주의 영성은 '제자도'라는 주제가 그러한 것처럼 오늘날 전쟁과 자본의 폭력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감동만이 아니라 유효한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기존의 윤동주에 대한 평전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기존에 출판된 윤동주 연구서들 중에 아마도 가장 중요한 책은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일 것이다. 김응교 교수는 『처럼』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윤동주가 곁에 있다고」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송우혜 선생님의 저서가 역사적 실증주의에서 시인 윤동주의 삶을 구성한 평전이라면, 제 글은 시의 원전을 분석하여 시를 통해 윤동주를 재구성하는 '시로 만나는 윤동주'라는 입장입니다. (515쪽)


역사학자이자 소설가인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은 시인과 관련된 현존하는 문서들과 증언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하여 '역사적(historical) 윤동주'를 제시하고 있다면, 김응교의 『처럼』은 작품 속에 표현된 시인을 추적하는 독특한 형식의 평전이다. 물론 송우혜의 평전 또한 시인의 여러 작품들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이 새로운 평전은 그동안 윤동주에 대한 연구서들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던 동시를 포함해서 시인이 남긴 대부분의 작품을 읽고 있다는 점에서 윤동주 시인의 삶과 작품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책이다.


      저자가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이기에 윤동주의 작품에 대한 그의 이해와 표현이 '분석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시적'이며, 그 깊이가 남다르다. 곧, 작품의 구조를 해체하고 의미를 분석하기보다는 시적 표현들 속에 녹아 있는 시정신 또는 시혼(詩魂)을  밝히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개인적으로 윤동주에 대한 여러 책들과 논문들을 읽었지만, 그 중에서도 작품(text)과 환경(context)을 균형있게 고려하고 있는 이 책에 담긴 해석이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일본에서 수년 간 디아스포라(diaspora)로 생활한 저자의 경험이 디아스포라 윤동주의 삶과 작품을 해석하는 데에 배경을 이루고 있어서 그의 해석은 더욱 공감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담긴 해석이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상에 완벽한 책도 없고, 시를 완벽하게 해석할 수도 없다. 그래서 저자는 최근 4쇄를 낼 때에 몇 가지 잘못된 정보와 오자를 바로 잡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평생 이 책을 살필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여름, 한 교회 청년부가 윤동주 시인이 태어나고 자랐던 만주 땅으로 역사탐방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 여름이면 많은 교회들이 주로 단기선교를 떠나지만, 한 번씩 국내외 기독교 역사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도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역사 의식과 통찰력을 갖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신앙의 선배 윤동주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이들에게 있어서 김응교의 『처럼』은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과 더불어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아마 이미 눈치 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저자는 이런 종류의 책에서는 예사말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관습과는 달리 높임말을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이것은 조금이라도 더 쉽고 친절하게 독자들에게 윤동주를 소개하려는 저자의 노력인 듯하다. 그리고 각 장도 분량이 길지 않아 한 자리에 앉아서 한 번에 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결코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 한 번에 여러 장을 읽기보다 한 번에 한 장씩 읽으며, 더불어 그 장에서 언급된 윤동주의 시를 생활 속에서 묵상한다면, '저자의 윤동주 이해'를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윤동주 이해'를 더욱 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윤동주는 침묵으로 최초의 악수를 우리에게 건넵니다. 슬픔 곁으로 가라고, 웃음 곁에서 웃으라고, 그게 축복이라고, 윤동주도 곁에 있다고. (519쪽) 


이 마지막 구절을 읽는데 눈앞에 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것은 한 손으로는 동주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독자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저자의 모습이다.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한 손으로 그 손을 잡는다면, 또한 다른 손으로는 동주의 손을 만지고 잡게 될 것이다. / 바람연필 권혁일

  1. Philip Sheldrake, A Brief History of Spirituality (Malden, MA: Blackwell, 2007), 14-15. [본문으로]
신고
posted by 바람연필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영적 여정으로서의 교육:

교사들의 멘토, 파커 파머


가르치고 배우는 일의 의미를 묻는, 교회 안팎의 진지한 교육자들이 경청하는 교육사상가가 있다. "교사들의 교사"라고도 불리는 파커 파머(Parker J. Palmer: 1939-)다. 파머는 1998년 미국 교육자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리더십 프로젝트')에서 과거 1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서른 명 가운데 한 명으로, 중요한 "어젠다 상정자" 열 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된 바 있다. 11개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전미교육언론협회가 주는 특별상을 두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종교교육협회(REA)에서 종교교육에 큰 영향을 끼친 지도자에게 수여하는 ‘윌리엄 레이니 하퍼 상’을 받았는데, 이 상의 과거 수상자로는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 엘리 위젤(Elie Wiesel), 파울로 프레이리(Paolo Freire) 등이 있다.


교육사상가로서의 파머의 공헌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는 ‘영성’이다. 파머는 기독교 안팎의 교육자들로 하여금 교육의 영성적 차원에 눈뜨고 그에 관해 진지한 성찰과 모색을 하게끔 만든 사상가요 운동가다. 파머는 전형적 ‘종교교육자’ 범주에 들지 않는 인물이다. ‘교육과 영성’을 논할 때 파머가 뜻하는 바는 교육의 ‘목표’로서의 영성이 아니라, 교육의 ‘원천’으로서의 영성이다. 다시 말해, 파머의 주장은 단순히 ‘종교교육’을 강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교육은, 무엇을 가르치는 교육이든, 이미 그 뿌리(radix)와 본질에서 영(성)적인 행위이며, 그 뿌리를 알아보고(re-cognize) 되찾을 때 비로소 우리는 위기에 처한 교육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고등교육계에 일대 사건(a phenomenon)”과 같은 책이라고 평한 바 있는, 파머의 주저 「To Know As We Are Known」(「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이종태 옮김, IVP)는 “영적 여정으로서의 교육”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파머는 단순히 기도로 시작하고 마치는 수업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주장은 보다 급진적(radical)이다. 파머는 가르치고 배우는 일 자체가 그대로 기도인 교육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자아보다 더 큰 무엇과 연결되고자 하는 추구로서의 기도 말이다. 파머에게 영성은 자기초월성을 뜻하며, 자기를 초월해 타자와 관계를 맺는 용기로서의 영성은 가르치고 배우는 일, 즉 교육의 혼 자체다.


파머는 가르치는 일을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진리에 대한 순종”이니 하는 다분히 종교적인 어휘, “공간 창조”니 하는 다소 모호한 개념으로 이루어진 정의이지만, 많은 이들이 이 정의에서 그간의 사회학적, 심리학적 접근만으로는 다가가지 못했던 교육의 깊은 본질을 새롭게 발견하고, 위기에 봉착한 현대교육을 파국에서 건져낼 귀중한 통찰과 영감을 얻고 있다. 이 정의를 비롯해 파머의 교육사상 전체의 근저에 자리하는 것은 앞서 언급된 책 제목 “To know as we are known”이 말해주듯, 그의 인식론(epistemology)이다. 파머는 잘 가르치는 교육자이기 이전에, 먼저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더 나아가 “진리란 무엇인가?”하는 문제를 깊이 천착한 철학자다. 파머의 철학적 교육학은 “객관주의”를 주적(主敵)으로 상정한다. 객관주의란 한마디로 진리는 “객관적”인 것이며, 따라서 진리를 알자면 우리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이론(理論)이나, 기실 (탈)현대 철학계에서 ‘객관주의’는 여러 각도에서 비판과 반성의 대상이 되어 왔다. 파머는 객관주의를, 이제는 넘어서야할 ‘계몽주의 프로젝트’의 일환, 혹은 그 인식론적 토대로 본다. 객관주의는 주체인 ‘나’가 나 이외의 다른 모든 것들(the others)을 ‘대상’(object)으로 보는 눈이다. 사실, ‘눈’이라기보다는 ‘손’이다. 왜냐하면, 객관주의는, “지식과 권력”의 문제를 상정하는 사상가들이 지적하듯, 결국 인식의 주체가 인식의 대상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무언가를 파악(把握)하려 하는 것은 그것을 장악(掌握), 즉, 내 손아귀(掌)에 넣고(握) 주무르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인식과 지배의 대상이 된 존재들은 내 손바닥 위에 놓일 수 있을 만큼 축소(reduction)된 존재들이다. 즉, 객관주의는 대상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다. 파머는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은 그들 앞에 놓인 주제(subject)를 ‘마스터’해야 할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함께 대화를 나눌 상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파머에게 진리는 “인격적”이다. 내가 대상을 알기를 추구할 때 또한 그 대상이 나를 알기를 추구한다. 파머에 따르면, 진리는 숨어서 우리를 피하고 있는 무엇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숨어서 진리를 피하고 있다. 우리는 진리의 변화시키는 힘을 피해 숨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하는 훈련(askesis), 지식(information)이 아닌 영(성)적 변화(transformation)를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공부다.


이쯤 되면, 눈 밝은 독자들은 파머의 인식론과 또 교육철학이 얼마나 깊이 기독교 신학과 영성에 뿌리를 박고 있는지를 알아보게 된다. 결국 파머의 말은 위대한 신학자이자 영성가였던 아우구스티누스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 성인(聖人)은 말했다,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다(amor ipse notitia est/love itself is a form of knowing).” 참된 앎은 언제나 우리를 공동체 안으로 이끈다. 우리는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는 신학적, 영적 진실을 깨닫게 되고, 그 관계의 신비를 우리 삶으로 살아내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가르치고 배우는 일, 즉 교육은 그 알면 알수록 놀라운 신비에 이끌리는 여정, 다시 말해, 영적인 여정이 된다.


이종태, <기독공보> 2016년 5월 28일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산처럼

[서평]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험하다

케네스 리치의 하나님 체험[각주:1]

Experiencing God: Theology as Spirituality

케네스 리치 지음 · 홍병룡 옮김 | 청림 | 2011년


영성 지도(spiritual direction) 사역에 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케네스 리치(Kenneth Leach)의 《영혼의 친구》(Soul Friend)를 꼭 읽어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케네스 리치라는 이름은 아마도 영혼의 친구》라는 책을 통해 가장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리치는 영성 지도에서 중요한 저작들을 남겼는데, 이 책 《하나님 체험》(Experiencing God)은 영성 지도와 관련된 삼부작으로 이루어진 시리즈 중 영혼의 친구》와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True Prayer)에 이은 시리즈의 마지막이자 세 번째 책이다. 이 삼부작을 잘 들여다보면 영성 지도에서 중요한 주제들을 잘 다루어주고 있다. 영혼의 친구》는 영성 지도의 정의, 영성 지도의 역사, 영성 지도와 기도, 영성 지도와 심리학 등의 주제들을 통해 영성 지도를 소개하는 개론서 역할을 해주고 있다.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영성 지도에 참여하는 영성 지도자나 피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라는 영성 훈련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체험》은 역시 영성 지도에서 나누는 대화의 주요한 소재가 되는 하나님 경험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리치는 이 세 권의 책을 통해 영성 지도라는 사역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 체험을 접근하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리치는 왜 영성 지도에 그토록 큰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리치는 1939년에 영국에서 출생하였고, 1965년에 서품을 받은 영국 성공회의 신부이다. 성공회 신부로서 리치는 다양한 목회활동에 참여했겠지만, 그의 이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센터포인트(Centrepoint) 사역이다. 그는 센터포인트라는 자선단체를 1969년에 창립했는데, 이 단체는 16-25세의 청소년과 청년 노숙인들에게 숙소를 제공해주는 사역을 해왔다. 센터포인트의 이전 대표 후원자가 다이애나 왕비, 현재 대표 후원자가 그녀의 아들인 윌리엄 왕자라는 사실은 이 단체가 그 사회에서 얼마나 공신력 있는 단체가 되었는가를 보여주며, 동시에 리치가 영국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끼쳤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영성지도와 관련해서 중요한 사실은 센터포인트의 사역 가운데 하나가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링이라는 점이다. 센터포인트는 신뢰할 수 있는 멘토들을 일대일로 청소년들과 연결시켜 주고, 1년 동안 서로 만남을 갖고 도움을 주도록 해왔다. 멘토링과 영성 지도는 구분되지만 비슷한 사역이므로,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링이 이 단체에서 중심적인 사역이었음을 볼 때, 이것은 리치가 영성 지도라는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영성 지도의 방향과 성격을 이해하고 규정하는데 틀림없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저자와 영성지도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하나님 체험이라는 책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제목. 이 책은 “하나님 체험”을 제목으로 뽑았는데, 미국 시카고 대학의 유명한 기독교영성학(Christian Spirituality) 학자인 버나드 맥긴(Bernard McGinn)이나, 지티유(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샌드라 쉬나이더스(Sandra Schneiders)가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 영성이라는 학문에서 “하나님 체험”은 핵심적인 주제이다. 영성이라는 학문은 체험 (또는 경험)을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영성은 체험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은 기독교인이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독교 영성학을 세 분야로 나눈다면, 성경적 영성(biblical spirituality), 교회사적 영성(historical spirituality), 그리고 목회적 영성(pastoral spirituality)이다. 성경적 영성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체험을 다룬다. 교회사적 영성은 교회사의 자료에 나오는 하나님 체험을 다룬다. 그리고, 목회적 영성은 현대 기독교인의 하나님 체험을 다룬다. 이처럼 “하나님 체험”은 기독교 영성의 핵심 주제이자, 영성지도 대화의 핵심 주제가 된다.

    그런데, 저자는 부제를 “Theology as Spirituality” (영성으로서의 신학)라고 했다. 이 표현은 이 책의 방향을 짐작하게 해준다. 즉, 저자가 “머리말”에서도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조직신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영성적 관점에서 씌어진 것이며, 따라서 신학적 논쟁을 피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 동시에, 저자가 생각하는 신학이란 변화의 체험이 일어나는 신학이다. 리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된 신학이란 참 하나님과의 만남 안에서 또 만남을 통해 인간이 변화되고 세상이 바뀌는 것을 다루는 변혁의 신학이기 때문이다.” 신학과 영성의 관계에 대한 토론 또는 논쟁은 교회사에서 무척 오래된 주제이다. 쟝 르클레르크(Jean Leclercq, 1911~1993)라는 중세사에 정통한 영성학자는 대학의 출현이 영성과 신학의 분리를 낳았다고 주장했는데, 리치는 영성과 신학을 하나님 체험 안에서 다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과 영성의 통합이라는 주제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많은 신학자나 목회자의 고민과 맥을 함께 한다. 신학교 교육이 좋은 목회자를 양성하는데 있어서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하면서, 신학교마다 영성훈련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는 것은 이 고민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신학과 영성의 통합이라는 리치의 화두는 오늘날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매우 적합한 주제이다.

    자, 이제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리치는 1장 “하나님께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서 하나님의 안부를 묻는다. 니체나 마르크스, 프로이드가 주장하듯이, 현대 사회에서 하나님은 정말 죽은 것인가? 아니면, 마르틴 부버나 자크 엘룰이 주장하듯이, 하나님에 대해 그동안 쓰였던 개념적 언어가 죽은 것인가? 저자는 나중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침묵하고 계신다. 이제는 참된 영성을 회복하기 위해 잘못된 하나님 이미지에 기대왔던 거짓평안에 안주하지 말고, 창조적 의심을 바탕으로 무신론 너머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실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여기에서 리치는 무신론자들의 의심마저도 창조적 의심을 가능케하는 디딤돌로 겸손하게 사용하고 있다. 리치가 현 상황을 “종교적인 준거 틀, 성스러움에 대한 의식, 심지어 하나님의 관념까지” 모두 허물어졌다고 묘사하는 것은 다분히 리치가 이 책을 쓰던 20세기 중반 유럽의 상황에 바탕을 둔 인식이다. 그러나, 이 상황인식은 현재 한국 사회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비치고 있는 한국 교회의 모습은 진정 하나님의 현존을 증명해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한편으로 돈과 권력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상실하고 영적분별력을 잃어버린 채 내면적 체험에만 골몰하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리치의 조언을 우리에게 적용해보자면,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한국교회를 사랑하신다는 급급한 변명이 아니라, 우리가 체험한다고 믿고 있는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인가, 우리의 믿음과 영성생활의 토대가 참된 것인가를 의심해보는 것이다.

    하나님 체험의 2장부터 13장까지 나오는 내용은 우리의 의심이 창조적 의심이 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로운 토대 위에 세우는데 있어서 매우 도움이 되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경험들을 잘 정리해놓고 있다. 성경과 교회사를 통틀어서 신앙의 선배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모습을 열두 가지 스펙트럼으로 묘사하고 있다. 먼저, 2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구약을 통해 만나는 하나님으로서 사막의 하나님, 거룩한 하나님, 그리고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3장 “예수의 하나님”은 복음서를 통해, 인자, 하나님나라,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라는 주제로 예수님을 살펴 본다. 4장 “하나님, 그리스도, 교회”는 복음서, 사도행전, 그리고 서신서를 바탕으로, 인류를 하나로 만드시는 하나님, 구원과 화해, 빛과 사랑의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그리고 종말론을 다룬다. 5장 “사막의 하나님”은 사막 교부들과 수도원 운동을 중심으로 고독과 관상, 단순함, 기다림, 투쟁의 영성을 강조한다. 6장 “구름과 어둠의 하나님”은 동방과 서방의 전통을 섭렵하며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통한 앎”의 체험, 즉 부정적(apophatic) 체험을 설명해준다. 7장 “물과 불의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과의 만남을 다루는데, 특히 오순절 전통의 “성령세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신비주의 전통의 마음을 거룩으로 이끄는 사랑의 불에 대해 설명한다. 8장 “육신을 입은 하나님”은 성육신, 몸, 물질, 성(sexuality), 그리고 신화(deification)라는 주제를 다룬다. 9장 “성찬의 하나님”은 성찬식, 제사,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전례의 해방적 성격 등에 대해 설명한다. 10장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은 하나님의 고통, 대속인가 화해인가, 정치적 행위로서의 십자가, 실천신학으로서의 십자가 신학, 그리고 제자도 등을 다룬다. 11장 “심연의 하나님”은 내면으로의 여정, 신비주의, 영적 여정의 삼중 단계, 영적지도, 그리고 신비주의와 정치 등에 대해 설명한다. 12장 “어머니 하나님”에서는 하나님의 여성성을 경험한 영성가들, 마리아론의 문제, 그리고 페미니즘 신학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13장 “공의의 하나님”은 개인주의를 배격하고 사회정의를 하나님의 사회적 성품에 근거한 것으로 보며, 평화 및 가난이라는 주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이상의 열두 가지 하나님 체험은 저자가 인위적으로 나눈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분류라고는 할 수 없다. 내용에 있어서 “사막” 그리고 “어둠”이라는 주제의 경우처럼 겹치는 부분도 있다. 또, 독자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서 저자와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독자들 가운데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하나님 이미지가 성경과 교회사의 자료를 통해 제시되는 것에 신선한 도전을 받을 수도 있다. 필자가 보기에 리치의 열두 가지 하나님 체험 분류는 기독교 영성 자료에 대한 상당한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겸손한 고백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들의 영성생활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연구를 위해서 기독교 영성학적으로도 무척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체험에 대한 필자의 전체적인 소감 몇 가지와 함께 북리뷰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첫째, 다수의 영성가들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영성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독자들은 현기증을 느낄 수도 있다. 각각의 영성가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는 존스, 와인라이트, 아놀드가 편집한 《기독교 영성학》(The Study of Spirituality)과 버나드 맥긴, 질 라이트, 루이스 두프레 등이 각각 편집한 《기독교 영성 1, 2, 3》(Christian Spirituality 1, 2, 3)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이 책에는 전적타락, 마리아론, 화체설 등과 같은 주제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독자들이 신학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 다소 있다. 그 이유는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저자가 성공회 신부이기 때문에 그의 신학적 입장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러나, 작은 몇 부분에서 신학적 논쟁에 사로잡히지 말고 이 책의 주제인 하나님 체험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유익을 얻기 바란다.

    셋째,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영성관련 서적은 특히 번역이 중요하다. 체험을 표현하는 표현들이 번역에 따라서 더 이해할 수 없게 되거나 전혀 다르게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번역은 정말 훌륭하다. 진심으로 역자의 수고와 열정에 감사한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지막으로, 책이 상당히 두꺼운 편이라서 지레 포기할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펼치면 으레 갖기 마련인 독서를 빨리 완수하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읽어나가면, 영성가들의 글에서 인용한 부분들이 마치 맑은 우물에서 직접 길어온 샘물들과 같아서 그로 인해 하나님을 새롭게 체험하고 새 힘이 솟아나는 경험들이 일어날 것이다. / 이강학

  1. * 이글은 〈목회와신학〉 2012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바람연필

[서평] 부담 없는 입문서, 아쉬운 연구서

토머스 머튼

은둔하는 수도자 ∙ 문필가 ∙ 활동하는 예언자

Mission-Shaped Hermit: Thomas Merton, Mission and Spirituality

키스 제임스 지음 · 김은해 옮김 | 비아 | 2015년


    선교와 영성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올해 초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5)에 관한 책을 한 권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성공회 출판사 '비아'에서 나온 《토머스 머튼: 은둔하는 수도자, 문필가, 활동하는 예언자》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Mission-Shaped Hermit :Thomas Merton, Mission and Spirituality인데요, 문자적으로 옮기자면 "사명으로 형성된 은둔 수도자: 토마스 머튼, 선교와 영성"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서의 제목에 포함된 "Mission-Shaped" 운동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 운동은 Mission-Shaped Church[사명으로 형성된 교회]라는 제목의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2004년 보고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로완 윌리암스(Rowan Williams)가 서문을 쓴 이 책은 영국 사회의 세속화와 그로 인한 교인수 감소라는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교회의 모델로서 "선교적인 교회"(missionary church)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 이후로 "Mission-Shaped"라는 형용사구는 일종의 유행어가 되어 영국 국교회에서 출판되는 많은 문서와 책들의 제목에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키스 제임스(Keith James)의 Mission-Shaped Hermit도 이러한 영향 아래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각주:1]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듯이, 영어 단어 'mission'[미션]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주로 '선교'라고 번역되고 있고,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어려운) '임무' 또는 '과제'라는 의미로 번역 없이 그대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사명' 또는 '천직'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내리신 명령(마태복음 28:19-20)처럼,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사명'은 일차적으로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는 '선교'를 의미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머튼의 글에서 '미션'이라는 단어는 거의 대부분 우리말로 '선교'보다는 '사명'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머튼의 자서전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을 읽고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정작 머튼 자신은 비종교인 또는 타종교인들을 '개종'시키는 선교에 대해서는 거의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머튼은 그리스도인의(또는 수도자의) 사회적, 도덕적, 시대적 사명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글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 책, 《토머스 머튼: 은둔하는 수도자, 문필가, 활동하는 예언자》에는 '미션'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선교'와 '사명' 사이의 간극이 존재합니다. 


   구체적으로 이 책의 저자 키스 제임스는 '선교'라는 관점에서 머튼을 소개합니다. 그는 서문에서 "토머스 머튼이 선교를 지향하는 운동을 점검했다면 그는 과연 어떻게 반응했을까?"(8)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약점입니다. 먼저 장점인 이유는 지금까지 머튼에 관한 책과 글들이 아주 많이 나왔지만, 선교의 관점에서 머튼을 이해하고 소개하는 글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머튼은 선교보다는 '종교 간의 대화'라는 주제로 더 많이 연구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라는 바늘로 머튼의 인용구들을 구슬처럼 꿰매고 있는 이 책은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다소 실망스럽게도 실제로 그 내용에 있어서는 선교에 대한 머튼의 직접적인 이해에 대해서는 거의 말해 주고 있지 못합니다. 

    저자는 본론에서 머튼이 수도생활을 통해 깨달은 지혜와 유산들을 (그것들이 선교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몇 가지 간략하게 언급한 뒤에, 결론에서 그것들이 오늘날의 선교에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인지 '적용' 또는 '유추'하고 있습니다. 키스 제임스가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제7장 머튼과 선교: 결론"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 담겨져 있는 듯합니다.

그리스도교인은 은연중에, 때로는 노골적으로 다른 이를 개종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교회는 다른 종교 집단을 그리스도교 선교를 방해하고 국가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교적 유산을 훼손하는 경쟁자로 곧잘 간주한다. 신앙과 다른 길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 머튼은 진리에 열린 태도를 가질 것을 권했다. 진리는 어디에서든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열린 태도는 자신과는 다른 이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자신과는 다른 이를 사랑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세상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선교를 따를 때 교회의 선교는 거듭나며 활력을 얻는다. 머튼은 교회가 행동만큼이나 침묵과 관상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침묵은 행동과 예언자적 증언을 이끌어 낼 수 있다. (65쪽)

곧, 타종교인을 개종의 대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열린 태도로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며, 교회가 선교 활동을 할 때에는 활동 자체에 매몰되지 말아야 하고, 침묵을 통해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예언자적 증언이라는 열매를 맺어야한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제 견해에는 위의 구절에는 (이 책의 다른 구절들에도 종종 그런 부분이 발견되지만) 머튼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섞여 있습니다. 관상과 활동의 관계, 그리고 타종교에 대한 머튼의 사상을 가져와서 저자가 선교의 관점에서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맞는 것 같기도 하나 다른 한 편으로는 양복 옷감을 잘라서 한복에 갖다 붙인 것과 같은 부자연스러움과 논리적 비약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위의 "진리는 어디에서든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는 문장은 문맥상 모든 종교에, 또는 모든 종교의 바깥에 진리가 존재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는 매우 논쟁적인 이슈입니다. 저자가 구체적으로 머튼의 어떤 글에 근거해서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는지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머튼은  타종교에서 수련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자연적인 깨달음과 하나님의 선물로 얻게 되는 초자연적인 비전을 구분하였고, 타종교와 대화할 때에는 교리적 차원이 아니라 경험적 차원에서 접근하였습니다. 그래서 작가가 시도한 것처럼 머튼의 타종교와의 대화에 대한 생각을 선교의 영역으로 가져와 적용하기 위해서는 짧고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보다 신중하고 정확한 해석을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저자도 위에 인용한 구절의 바로 뒤에 이어지는 문장에서 "이러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지역 교회가 무엇을 실천해야 할지를 명료하게 도출해 설명할 수는 없다."(65쪽)라고 말하고 있으며, 몇 장 뒤에서는 "머튼의 통찰과 비전을 우리가 처한 상황에 실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오직 이를 행할 때에만 알 수 있다."(68쪽) 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처럼 키스 제임스는 이 책에서 머튼의 영성이 오늘날의 선교에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 지를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는 '머튼을 통해서 우리가 선교를 보다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한 견고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추상적인 선언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68쪽). 이것이 제가 이 책을 읽은 후에 남는 가장 진한 아쉬움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본론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경청', '사랑', '침묵', '예언', '초연함' 등에 관한 내용들은 이미 머튼에 대한 다른 책들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 사소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머튼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나 정보가 발견되는 점, 때로는 인용문이 머튼의 것인지 다른 인물의 것인지 책 뒤에 있는 미주를 찾아 보지 않으면 본문에서는 구분이 되지 않는 점, 그리고 (이것은 한국어판 편집 과정에서의 실수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인용구는 미주의 참고문헌을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 점 등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실망은 머튼을 여러 해 동안 공부해온 저만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머튼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이라면, 100여 쪽 밖에 되지 않는(원서는 28쪽) 짧은 그 내용들이 쉽고 신선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 이 책은 크기도 작고 두께도 얇아서 손에 들고 다니기도 좋고, 독서에 대한 부담도 줄여줍니다. 또한 사실 이 책에 인용된 머튼의 많은 구절들은 문맥에서 그 내용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더라도, 그 구절만으로도 독자들에게 사고와 성찰의 문을 열어 준다는 점에서 유익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뒤에 실린 토마스 머튼에 대한 참고도서 소개는 머튼 입문자들에게 유용한 정보임에 틀림 없습니다. 또한 번역자와 편집자는 친절하게도 국내에 번역된 머튼 참고도서에 대한 소개까지 추가해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외 이 책이 갖고 있는 좋은 점은 각 장의 주제와 관련한 성찰을 위한 질문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서에서는 각장의 마지막에 질문이 달려 있지만,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각 장의 처음에 질문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먼저 그 장의 본문을 읽은 후에, 그 질문을 가지고 숙고하거나 다른 이들과 함께 이야기한다면 글을 마음에 새기는 데에 매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키스 제임스가 이 책에서 머튼의 선교 이해를 밝히는 데에는 그리 성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저자는 '선교와 영성'에 대한 중요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미셔널(또는 미션얼) 처치(Missional Church)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영국의 "미션 쉐이프드 처치 운동"과 비슷한 고민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해외 선교 뿐만 아니라 교회의 사명과 갱신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각주:2] 이와 관련하여 선교와 영성, 또는 교회 갱신과 영성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논의가 보다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 외에도 출판사 '비아'에서는 헨리 나우웬(Henry Nouwen: 1932-1996)이나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등에 대한 짧은 입문서들을 시리즈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찾아 보니 모두 영국 국교회 출판사인 Grove Books의 영성 시리즈를 번역 출간한 것이네요. 이런 이유로 비아에서 머튼의 입문서로 키스 제임스의 책을 선택한 것이겠지만, 굳이 Grove의 책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면, 역시 성공회 작가인 전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엄스의 A Silent Action: Engagements with Thomas Merton(Fons Vitae, 2001)을 번역 출간하는 것이 한국 독자들에게는 훨씬 유익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은 수도자와 사회 비평가로서의 토마스 머튼을 정교회 신학자 파울 에브도키모프(Paul Evdokimov: 1901-1970)와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혹시 비아에서 머튼에 관한 책을 한 권 더 출간할 계획이 있다면, 윌리엄스의 이 책을 고려해 준다면 고마울 것입니다. 

/ 바람연필 권혁일


  1. 1. "Mission-Shaped Movement"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했습니다. Angus F. Stuart, review of Mission-Shaped Hermit: Thomas Merton, Mission and Spirituality, The Merton Seasonal 35 no. 4: 40. [본문으로]
  2. 2. 참고. http://goo.gl/5GjlxI; http://goo.gl/SyCFSB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바람연필

[서평] 리처드 로어의 《불멸의 다이아몬드》

불멸의 다이아몬드 

우리의 진짜 자기를 찾아서 

Immortal Diamond: The Search for Our True Self 

리처드 로어 지음 · 김준우 옮김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15년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마음에 갇혀 끙끙거리다가 어느 순간 하고 벗어날 때, 그 사람이 참 아름다워 보인다. 마치 무덤 같은 고치에서 한 마리의 나비가 태어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이렇게 자기를 하고 벗어나게 해 주는 방법이 있다. 스승이신 장신대 유해룡 교수께서 신학생들에게 늘 이르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자기 초월로 이끄는 세 가지가 있다. 인격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 기도, 독서, 이웃 사랑이다.” 이 셋은 자기를 온전히 개방하지 않고서는 그 본질을 수행하기 불가능한 일이다. 낯선 세계, 낯선 생각, 낯선 이에게 자기를 '탁' 개방하고 내어주는 것. 그리고 종국에는 그 낯섬과 하나가 되는 것. 사람이 아름다워지는 때, 이를 두고 영적 수련이라고 하며, 이 셋은 기본이다.  그리고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최근에 좋은 책을 한 권 추천받았다. 이 책이 얼마나 맘에 드는지! 추천해주신 분, 이 책을 선별하여 번역한 번역자와 출판사, 출판비를 후원하신 분까지 책을 만지고 읽을 때마다 마음에 담고 기도를 드릴지경이다. 리처드 로어(Richard Rohr)의 《불멸의 다이아몬드》, 요즘 푹 빠져있는 참 좋은 벗이다.

    이 책은 인간의 궁극적 질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성서적이고 신학적인 답을 진짜 자기로 정의한다. 저자는 진짜 자기를 불멸의 다이아몬드라고 부르는데, 마태복음 13장의 밭에 감추인 보물에 대한 유비(analogy)이다. , 16세기의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가 영적 생활에 관해 글을 쓰기 위해 고심하던 어느날, 기도 중에 문득 떠올랐던 맑디맑은 수정궁의 상징과도 유사하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진짜와, 이 진짜를 대체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가짜 자기와, 가짜 자기가 구축한 세상, 그리고 이 둘의 체제(system)를 놀랍게 통찰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친 개인적 수행과 폭넓은 영적 지도의 경험 없이는, 쓸데없이 사서 고생하고 있는 신자들과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 가는 종교에 대한 깊은 애정 없이는, 결코 쓸 수 없는 말들이 수놓아져 있다.

    문장 사이를 서둘러 걸어가 마지막 끝에 빨리 도달할 수 없다. 머물고 맴돌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게 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쁘기도 하고 속이 시원하기도하다. 무엇보다 이런 책이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나와 주길 기다려왔다. 내 스스로도 너무 사서 고생을 많이 했다. 다른 이들에겐 시간을 단축시켜 주고 싶다.


기도하며 읽는 책

    이 책은 기도하며 읽어 가면 좋겠다. ‘센터링 침묵기도’(향심기도)로 시작한다.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은 잠시 머물며 글을 음미하기도 한다. 책 내용 중에 기도하기 좋은 말씀과 상징들은 좀 오랜 시간 묵상으로 기도한다. 예를 들어,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을 읽고 나면, 내 마음 밭을 바라보고 그 밭에 감추어진 하나님을 찾아 주목해 보는 기도를 각자 하고 싶은 방법으로 기도한다. 기도 자료가 더 필요하면 부록을 사용하면 된다.

    나는 지금 교회 기도 모임에서 이 책을 사용하고 있다. 자매님들과 함께 천천히 읽어가면서, 어려운 부분은 보충 설명을 해 주고, 함께 기도한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한국 개신교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고려할 때, 이런 책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회가 몇이나 되겠는가. 아빌라의 테레사가 살던 시절, 1559년 교회에서 금서목록이 발표되었을 때, 테레사는 자신이 즐겨 읽던 대다수의 책이 이 목록에 들어 있는 것을 알고는 깊은 실의에 빠졌다.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때 테레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살아 있는 책을 주리라.”는 주님의 큰 위로를 받았다(《천주자비의 글》, 26.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좋은 책들을 가까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혹시 아는가, 어쩌다가 진실로 "살아 있는 책" 자체이신 주님을 힐긋이라도 읽게 되는 날이 바로 오늘이 될런지! / 해'맑은우리  주선영

 


 

신고
posted by 해'맑은우리

갈망의 변증법

“갈망의 변증법”

《순례자의 귀향》  The Pilgrim's Regress

C. S. 루이스 지음 ·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13 단평 



"한번은 그리피스와 바필드가 내 방에서 점심을 같이 먹는데, 내가 얼결에 철학을 "학과(subject)"라고 지칭했다. 그러자 바필드가 말했다, '플라톤에게 철학은 학과(연구주제)가 아니었지. 삶의 방식(a way of life)이었지.'"


루이스의 회심기《예기치 않은 기쁨》에 나오는 장면이다(p. 323). 그 때 자기 말이 "경솔했"다고 말하는 루이스는 실은 평생에 걸쳐 더없이 진지한 철학도였다. 루이스에게 철학은 단순히 학문이 아니라 구도(求道)였고, 그 구도의 길 끝에서 그는 '참 철학'(True Philosophy)으로서의 기독교를 만났다. 루이스는 자신의 회심은 "감정적 회심이 아니었고, 거의 순전히 철학적 회심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회심 후 쓴 첫 기독교 저술인《순례자의 귀향》은 그의 회심이 실은 그의 ‘철학적 여정'의 결과였음을, 20여년 후에 쓰인 《예기치 않은 기쁨》보다 더 여실히 펼쳐 보여준다. 그래서 두 책 모두, 특히 루이스가 아직 "쉽게 말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쓰인 앞의 책은 더, 어렵다. 따라가기 쉽지 않다. 그러나 두 책 모두, 철학에 문외한인 독자들까지도 끝까지 존/루이스의 여정을 따라가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바로, 루이스/존의 “순례”길을 처음부터 추동(推動)한 그것, “기쁨”이다. 


《순례자의 귀향》은 루이스가 "갈망의 변증법"(dialectic of desire)이라고 부른, 사람을 영적 순례자로, 철학적 구도자로 만드는 “기쁨”에 대한 책/알레고리이다. 존은 그만 그 “섬”을 흘낏 보게 되고 말았다. “신처럼 지혜롭고 짐승처럼 자의식이 없는” 존재들이 거하는 그곳 말이다. “신처럼 지혜롭고 짐승처럼 자의식이 없는” 이라는 문장에서 방금 당신이 멈칫 했다면, 아마 당신도 언젠가 그 “섬”을 본 적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그 세계 밖에, 그 문 밖에”(‘영광의 무게’) 처한 존재로 느꼈던 순간 말이다. 그 순간, 존은 “흐느껴 울었다.” 


존은, 루이스는 자신을 흐느껴 울게 만든 그 “기쁨”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 길에서 만난 각종 인물/사상들과의 조우와, 그(것)들과의 논쟁은, 알레고리 작품의 전형을 따른 것으로서, 루이스 당대 지성사, 문화사에 대한 적요이자, “기쁨”을 추구하며 그 “거짓 대상들을 하나하나 밝히고 거짓임이 드러나면 단호히 내버리는” 길을 걸었던 루이스의 철학적 여정의 궤적이다. 여기서, 《순례자의 귀향》은 루이스가 기독교로 회심한지 겨우 1년 정도 되었을 때 2주 만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작품임을 기억하자. 여러 비평가들은 루이스 사상의 집 골조는 이미 이 때 거의 완성되어 있었고, 루이스의 기독교 세계가 지닌 고유한 풍취의 연원이 여기 있음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루이스는 하나님(“동쪽 산” “지주님”)을 믿기 전에 “하늘/초월/궁극적 실재”(“섬”)를 추구했으며, 그의 신학과 영성은 그 “섬”이 실은 “동쪽 산”의 일부라는, 즉 하나님은 “하늘의 님”이시라는 발견과 깨달음에 기초하고 있다. “하늘” 이야기를 “wishful thinking”이라 하여 의심하고 조롱하는 서구 근대 시대정신의 눈치를 보는 서구 신학자들과 달리, 루이스는 “하늘” 이야기를 철학과 신학 담론의 중심에 끌어들여, 교회 안팎의 사람들에게 ”thoughtful wishing"이 어떻게 우리를 진리/하나님께로 이끄는 길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흔히들 루이스가 “영적 갈망”의 존재를 통해 “하나님/하늘”의 존재를 논증했다고 하나, 루이스의 “갈망 논증”은 실은 그가 “삶으로 살아낸” 논증(lived ontological proof)이었고, 그렇기에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세상에, “신처럼 지혜롭고 짐승처럼 자의식이 없는” 이라니. 그 “섬”을 정말 본 것이 아니라면! 하늘을 맛본 사람의 글에서는 하늘이 엿보일 수밖에. /이종태


홍성사 쿰회보 (2013년 12월호) 게재







순례자의 귀향

저자
C. S. 루이스 지음
출판사
홍성사 | 2013-11-1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C. S. 루이스가 회심 직후 쓴 자전적 소설 이 책의 주인공이...
가격비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산처럼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4) : '파라다이스 여행'과 '내적 체험'

2014년 8월의 추천 도서


토마스 머튼 윌리엄 쉐넌 (4)

'파라다이스 여행' '내적 체험'




*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

   (1) 고요한 등불(Silent Lamp)  http://spirituality.co.kr/258

   (2) 토머스 머튼: 생애와 작품(Someting of a Reble) http://spirituality.co.kr/282

   (3) 머튼 백과사전 (The Thomas Merton Encyclopedia) 외 http://spirituality.co.kr/288

   (4) 파라다이스 여행과 내적 체험 (Paradise Journey & Inner Experience) 


이 달은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의 내적 체험과 이 책에 대한 해설이 담긴 윌리엄 쉐넌(William H. Shannon, 1917-2012)의 토마스 머튼의 파라다이스 여행를 소개합니다. 



1. 내적 체험 (The Inner Experience: Notes on Contemplation. Maryknoll, NY: HarperOne, 2003.)

 

    관상(contemplation)이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머튼이 수도 생활 초기부터 가져왔던, 그리고 글과 강연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대답해 왔던 중요한 질문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 질문을 다루고 있는 그의 첫 번째 작품은 《관상이란 무엇인가What is Contemplation?》(1948)라는 책이고, 마지막 작품은 이 책을 개정한 《내적 체험》(1968)입니다.[각주:1] 사실 전작의 개정판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책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 내용과 분량에 있어서 관상에 대한 머튼의 성숙한 사상 이 《내적 체험》에 담겨져 있습니다. 머튼은 이 책에서 이전보다 넓은 관점에서 관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그가 그동안 동양 종교를 연구하거나 현대 과학기술 사회에 대해 숙고하며 얻은 통찰들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머튼은 선불교의 사토리(satori)를 언급하며 자연 질서 안에서 거의 "임상적으로 완벽한" 내적 자아 실현의 예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토리는 "영혼의 내핵이 폭발하듯 열려서 가장 깊은 자아를 드러내는 영적 깨달음"이라고 이해합니다(7). 그에 비해서 기독교의 신비 체험은 "내적 자아를 인식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초자연적인 믿음의 강화에 의해서 우리의 내적 자아 속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12). 다시 말해 기독교적 관상은 내적 자아의 깨어남을 통해서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접촉하는 것"입니다. 모든 지식을 넘어서 말입니다(42).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관상에서 중요한 것은 향유도, 즐거움도, 행복도, 평화도 아닙니다. 그것은 최상의 사랑 그리고 해방된 영적 사랑의 활동 안에서 진리와 실재를 초월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관상에서 중요한 것은 만족이나 안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깨달음과 생명과 창조성과 자유입니다. 사실 관상은 사람의 가장 높고 본질적인 영적 활동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신의 아들됨을 가장 창의적으로 그리고 역동적으로 확증하는 것입니다. …… 그것은 사람이 그의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 아들(the Son)이 그의 아버지와 대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의 그리스도가 깨어나는 것이며, 우리의 영혼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깊은 '나' 안에 있는 진리(the Truth)와 신적 자유(the Divine Freedom)의 승리입니다. 그 가장 깊은 '나' 안에서 아버지가 아들과 하나가 되십니다. 믿는 자에게 주신 성령 안에서 말입니다. (34)


    또한 흥미롭게도 머튼은 TV시청자와 관상가를 비교하며, 신비한 매력에 끌려 수동적인 상태에 이르는 것은 서로 닮았지만, 사실은 무비판적으로 TV에 흡수되는 시청자의 모습은 욕망과의 치열한 싸움 뒤에 수동적인 연합(또는 infused contemplation)에 이르는 관상가의 삶의 정반대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참된 관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의 감각과 감정과 의지를 물질적 또는 일시적 수준에 묶어 두는 모든 것들과 아주 활발하게 그리고 고집스럽게 투쟁해야 합니다. 관상의 삶보다 활동적이고 강력한 형성(formation)을 요구하는 삶은 없습니다. 관상의 삶보다 외부적 요소들에 대한 의존에서 가차 없이 벗어나기를 강하게 요구하는 삶은 없습니다(126-27). 머튼에 의하면 관상은 삶의 일부가 아닙니다. 관상은 삶을 하나로 묶고 통합하게 합니다. "관상의 삶은 단순히 인간적 기술과 훈련이 아니라 우리 가장 깊은 영혼에 계시는 성령의 삶입니다"(45). 


      사실 이 책은 머튼이 출판을 보류해 놓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타계하였기 때문에,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2003년에야 윌리엄 쉐넌의 편집으로 정식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토머스 머튼의 묵상의 능력》(윤종석 옮김, 두란노, 2006)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번역판은 제목과 용어뿐만 아니라 장(chapater) 순서도 원서와 다르게 편집됨으로써 적지 않은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번역판이 출간되기 전에 대학원 수업 중에 이 책의 일부를 번역한 것이 있어서 개인 블로그에 올려 두었습니다. 제가 번역을 막 시작하던 때에 한 것이라 서투른 부분이 많지만, 책을 구입하기 전에 만약 《내적 체험》의 맛을 조금이라도 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다음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내적 체험》 제13장 죄의식 http://nephesh.tistory.com/336.



2. 토마스 머튼의 파라다이스 여행 (Thomas Merton's Paradise Journey. Cincinnati, OH: St. Anthony Messenger, 1981

     《내적 체험》에 대한 아주 훌륭한 안내는 윌리엄 쉐넌의 《토마스 머튼의 파라다이스 여행》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관상에 대한 머튼의 주요 저작 9권에 대한 해설서입니다. 각 작품들의 집필과 출판에 관한 배경 이야기들은 매우 흥미롭고 각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탁월한 머튼 학자 쉐넌은 책의 핵심 내용들을 아주 정확하고명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니다. 이 책에 포함된 머튼의 저작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1장 : What Is Contemplation?

제2장 : Seeds of Contemplation

제3장 :  The Ascent to Truth

제4장 : Thoughts in Solitude and "Notes for a Philosophy of Solitude"

제5장 : The Inner Experience

제6장 : New Seeds of Contemplation

제7장 : The Climate of Monastic Prayer

제8장 : Zen and the Birds of Appetite

제9장 : Is the World a Problem?


이 작품들에 대한 해설이 시기적으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관상에 대한 머튼의 사상이 발전해 가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책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는데 이전에 대학원 수업 때 동학들과 함께 나누어 번역했던 것들 중 제가 맡아서 번역한 일부분을 역시 제 개인 블로그에 올려 두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부족하나마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http://nephesh.tistory.com/333. 이것으로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를 마치며, 그동안 재미 없는 글도 관심을 갖고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권혁일


  


  1. 실제로 머튼이 개정작업을 한 때는 1959년 여름이지만, 최종으로 수정한 것은 1968년 그가 아시아 여행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바람연필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3) : 머튼 백과사전 외

2014년 7월의 추천 도서


토마스 머튼 윌리엄 쉐넌 (3)

머튼 백과사전


*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

   (1) 고요한 등불(Silent Lamp)  http://spirituality.co.kr/258

   (2) 토머스 머튼: 생애와 작품(Someting of a Reble) http://spirituality.co.kr/282

   (3) 머튼 백과사전 (The Thomas Merton Encyclopedia) 외

   (4) 파라다이스 여행과 내적 체험 (Paradise Journey & Inner Experience) : 2014년 8월15일


지난 달에 이어 이 달의 추천 도서로 윌리엄 쉐넌(William H. Shannon, 1917-2012)이 쓰거나 편집한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 서적들을 몇 권 소개하고자 합니다. 



1. 토마스 머튼 백과사전 (The Thomas Merton Encyclopedia. Maryknoll, NY: Orbis, 2002.)

      한 인물에 대하여 이런 백과사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그리고 연구의 가치가 있는 인물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수도자, 작가 그리고 영적 지도자인 토마스 머튼은 많은 저작물들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매우 독특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글들은 여러 매체에 중복해서 출판되기도 하였고, 지금도 계속해서 새롭게 출판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생각과 저술 주제는 개인적인 성장과 더불어 계속해서 변하고 발전하였습니다. 그래서 머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과 그의 글들의 탄생과 변화와 소멸을 제대로 '추적'하는 데에는 이 백과사전이 매우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머튼을 연구하는 학자들 뿐만 아니라, 머튼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어하는 열정적인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아직 한글로 번역되어 있지 않아서 한국에서는 제한적인 연구자들과 독자들만 이 책을 접할 수 밖에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 백과사전에는 (1) 머튼이 쓴 책들, (2) 그의 저술에 나타난 핵심적인 주제들, (3) 그의 삶에서 중요한 영향을 주고 받았던 사람들, (4) 그가 살았던 장소들에 관한 알찬 정보들이 알파벳순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윌리엄 쉐넌, 크리스틴 보센(Christine M. Bochen), 패트릭 오컨널(Patrick F. O'Connell)은 모두 국제토마스머튼학회(ITMS)의 창립멤버이며 회장을 지낸 탁월한 머튼 학자들입니다. 이들 중 연장자인 쉐넌은 이미 작고하였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여전히 머튼 연구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이 출판된 지가 이미 십여 년이 훌쩍 넘었기 때문에 2000년 대에 출판된 자료들은 반영되지 않았고, 그의 책의 해외 번역본이나 머튼이 수도원에서 한 강의가 녹음된 오디오 자료들은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출판되고 있는 그의 강의 자료들이 어느 정도 완간이 될 때, 이 백과사전도 업데이트가 되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2. 토마스 머튼의 편지 모음 (Collected Letters of Thomas Merton. 전5권.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s, 1985-1994.) 외

     한 인물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고 싶다면, 그가 쓴 일기와 편지 등의 개인적인 글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머튼은 수도원에서 참으로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머튼 유작 관리위원회에서는 윌리엄 쉐넌를 총편집자로 선임하여 그의 편지들을 주고 받은 사람들과 주제 등을 기준으로 선택하여 다섯 권의 묶음집으로 출간하게 하였습니다. 이 중 쉐넌은 첫 번째 책인 The Hidden Ground of Love: Letters on Religious Experience and Social Concerns Witness to Freedom: Letters in Times of Crisis를 직접 편집하였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틴 보센과 함께 이 다섯 권의 모음집 중 핵심적인 글들을 간추려서 Thomas Merton, A Life in Letters: The Essential Collection (2008)으로 출간하였는데, 이 축약본은 다섯 권의 편지 모음집들을 다 읽기 어려운 독자들에게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그는 머튼이 냉전 시대 때에 전쟁과 평화에 관한 주제로 쓴 편지들을 모은 Cold War Letters (2006)를 크리스틴 보쉔과 함께 편집하여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다음과 소개할 책과 함께 머튼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사상을 잘 보여 줍니다.


  


3. 평화를 향한 열정 (Passion for Peace)

     이 책은 머튼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에세이들의 모음집입니다. 윌리엄 쉐논은 전쟁과 평화에 관한 머튼의 에세이 23편과 머튼의 유명한 <평화를 위한 기도>를 묶어  Passion for Peace: The Social Essays 라는 제목으로 1995년에 출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시 축약하여 Passion for Peace: Reflections on War and Nonviolence라는 제목으로 2006년에 다시 독자들에게 내놓았습니다. 아마도 쉐넌이 이 책을 이렇게 축약본으로 재출간한 것은 위의 편지글 모음집의 경우와 같이 두꺼운 책을 다 읽기 어려운 일반적인 독자들을 배려한 것이라 추측됩니다. 그런데 약 반 세기 전에 쓰여졌고, 이미 출간되었던 책이 십여 년 후에 축약본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이 일종의 '고전(classic)'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20세기 중엽에 쓰인 머튼의 글들이 21세기 초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혜와 의미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서평은 필자가 영어로 쓴 졸고가 있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은 참조하시길 바랍니다.(http://nephesh.tistory.com/254)



4. 깨달음의 기도 (Silence on Fire : The Prayer of Awareness)

     마지막으로 윌리엄 쉐논은 머튼의 1차 자료(에세이, 편지 등)를 편집하거나, 머튼에 대한 2차 자료(안내서, 평전, 백과사전, 논문 등)를 쓴 것 외에도, 자신이 머튼의 글을 읽고 연구하며 얻은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고 신앙이나 삶에 대해 직접 쓴 책들도 여러 권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권이 한국에 《깨달음의 기도》(은성, 2002)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소개된 Silence on Fire : The Prayer of Awareness (New York: Crossroad, revised edition, 2000)입니다. 이 책은 관상에 이르는 침묵기도를 그 소재로 하고 있는데,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인 "깨달음의 기도"입니다. 여기서 쉐넌이 말하는 '깨달음'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현존(presence) 안에 있음을 '인식(aware)'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번역이 아주 흡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글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니 한국어 독자들에게는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 달에는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머튼의 관상에 대한 성숙한 사상이 담겨져 있는 The Inner Experience와 이 책에 대한 쉐넌의 해설이 담긴 Thomas Merton's Paradise Journey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권혁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바람연필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2) : Something of a Rebel

2014년 6월의 추천 도서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2)

토머스 머튼: 생애와 작품 (Something of a Rebel)





     지난 4월에 이어 이 달의 추천 도서로 윌리엄 쉐넌(William H. Shannon, 1917-2012)이 쓴 토마스 머튼 안내서를 한 권 소개하고자 합니다. 'Something of a Rebel' : Thomas Merton, His Life and Works : An Introduction (Cincinnati, OH: St. Anthony Messenger, 1997). 비교적 얇으면서도 다소 긴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영성가이자 작가 중의 한 사람인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에 대한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인 입문서입니다. 권위 있는 머튼 학자인 윌리엄 쉐넌은 "토마스 머튼을 잘 알지 못하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머튼을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쉐넌은 먼저 제1장에서는 머튼의 생애를 수도승이 되기 전과 후로 나누어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가장 짧은 제2장에서는 왜 머튼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제3장에서는 머튼의 작품들에 나타나는 주제들 중 주요한 여덟 가지를 선정하여 그의 탁월한 식견을 바탕으로 명쾌하게 해설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머튼 도서관"이라는 제목이 붙은 제4장에서는 '머튼 독서'를 시작하는 이들이 그의 수많은 저작들 -머튼의 글과 강의는 지금도 계속 새롭게 출판되고 있습니다 - 에 입을 쩍 벌리고 포기하지 않도록, 처음에 읽으면 좋을 책들을 몇 권 추려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일종의 '여행 안내서'입니다. '토마스 머튼'이라는 미지의 '여행지'로 떠나고자 하는 이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 또는 여행 도중에 손에 들고 참고해야 할 '여행 안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Something of a Rebel"이라는 이 책의 제목에 흥미를 느끼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쉐넌은 이 제목을 머튼이 영국에서 다니던 고등학교(Okaham School)의 교장선생님이 1942년 겟세마니 수도원장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에서 가져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탈보트 그리피스(G. Talbot Griffith) 교장에 의하면, 오캄 스쿨 재학시절 머튼은 "동료들 가운데 다소 전설적인 인물이었으며 분명히 어느 정도 반항아(something of a rebel)"였다고 합니다. 쉐논은 머튼이 부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모든 삶의 국면에서 안락하고 생명력이 없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점에서 '반항아'였다고 말합니다. 쉐논은 그래서 "something of a rebel"이라는 어구가 그의 생애와 작품을 관통하는 묘사라고 믿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가 어떻게 생명력이 없는 과거에 반항을 하였는지는 여러분들께서 직접 독서를 통해 파악하시도록 남겨 두고자 합니다. 이 책은 이미 10여년 전에 오방식 교수(장신대)에 의해 번역되어《토마스 머튼:  생애와 작품》(서울: 은성, 2005)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으니, 머튼을 공부하는 이들 또는 머튼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활용하기 쉬운 좋은 자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쉐넌은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자신이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의도한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머튼]의 글들을 통하여 머튼은 당신과의 대화로 들어갈  것이다. 그는 당신에게 자신에 대하여 말할 것이며 당신은 그 안에서 거울에 비취는 당신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볼 것이다. - 토마스 머튼:  생애와 작품》(10).



*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


   (1) 고요한 등불(Silent Lamp)  http://spirituality.co.kr/258.


   (2) 토머스 머튼: 생애와 작품(Someting of a Reble) 


   (3) 머튼 백과사전 (The Thomas Merton Encyclopedia) 외 : 2014년 7월 15일


   (4) 파라다이스 여행과 내적 체험 (Paradise Journey & Inner Experience) : 2014년 8월15일




/ 권혁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바람연필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