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생각을 태우소서

한 줄 묵상 2014.11.16 15:57

어떤 형제가 한 운둔자를 찾아와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 생각이 저를 너무도 괴롭힙니다.”

은둔자가 대답했다. “그대는 가공할 무기,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던져버리고, 대신에 갈대로 만든 막대기, 곧 사악한 생각을 손에 쥐고 있구려. 다시 불을 움켜쥐시오. 불을, 가공할 무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움켜쥐시오. 그러면 사악한 생각들이 접근할 때에 마치 불이 갈대를 사르듯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것들을 온통 파괴할 것이오. 악한 생각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압도할 수 없소이다.”  

- 사막 교부들 지음, 배응준 옮김, 《깨달음》, (서울: 규장, 2006), 88-89.


꿈에서 이 분이 등장한 게 벌써 세 번째이다. 간헐적이긴 하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내 꿈에 등장하시는 분도 드물다. 현실에서는 교제할 수 없고, 소통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는 분이지만, 다행스러운 건 꿈에서 이 분과 유익하고 좋은 교제의 시간을 나누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드나 융의 이론에 따르면, 꿈은 "현실에서 좌절된 욕망에 대한 보상"이라고 한다. 그대로 적용해서 해석하자면, 그 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소통하고 대화하고 싶은 내 기대감과 갈망이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고 단절을 느끼기에 꿈에서라도 내 무너진 욕망이 위로와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꿈은 현실의 반대”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겠다. 

이 꿈을 통해 내 안의 관계와 소통에 대한 갈망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 갈망의 기저에 더 깊은 열망(desire)이 있는지 성찰해 본다. 인간에게 관계는 본능적인 갈망이기도 하지만 이 갈망이 얼만큼 순수한 것인지는 오직 내 자신 스스로만 알 수 있을지 모른다. 그 분과의 관계를 복원한 뒤에 내가 얻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지는 않은가? 그 분의 명성과 사회적 위치를 통해 내가 덕보려고 하는 의도는 없을까? 우리 사회에서 관계는 재산이라고 하는데, 내 기대치는 혹시 내 재산을 더 늘리고 싶은 욕심인가?

사막의 은둔자는 내 영혼을 해부해 보길 원한다. 내 욕망과 갈망, 기대감의 기저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지는 않았는지! 삶과 인생의 주권자를 하나님으로 말로는 선포하면서, 일상 속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인간의 방법을 사용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기지는 않는가! 

“주여, 성령의 불을 드소서. 거짓되고 허망한 욕망의 갈대는 불사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주소서!" / 이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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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름위 햇살

순결을 낳는 침묵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한 줄 묵상 2013.11.24 07:21


압바 이사야가 말했다. "말하기보다 잠자코 있는 것을 좋아하라. 침묵이 보물을 쌓아두는 것이라면, 말하는 것은 보물을 흩뜨리는 것이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주제별》, ch.4, 18.


침묵한다는 것, 반드시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침묵을 통해 거짓과 잘못을 숨길 수도 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무너뜨리고 파괴할 목적으로도 쓰인다. 부모의 자녀들을 향한 침묵은 종종 벌로써 쓰일 때도 있다. 

사막 수도자들이 얘기하는 침묵은 이런 것들과는 다르다. 그리고 단순히 입으로 말을 그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침묵은 사막 수도자들에게 자신들의 내적 고요함과 평화를 찾고 유지하기 위한 반드시 필요한 훈련이었다. 

이런 침묵은 생명력을 가져다 준다. 각종 소음으로 요동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해준다. 자신의 소리를 내려놓음으로 비로서 하나님을 듣게 된다.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생긴다. 무엇이 진정한 소리이고 무엇이 소음에 불과한 지를 깨닫게 된다. 언제 말을 해야하고 언제 침묵을 지켜야 할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된다. 

내적 평화를 얻고자 하는가? 깨어서 침묵 가운데 앉아 있어보라. 하나님의 품이 좀 더 가까이 느껴질 것이다.  그 품은 더 이상 숨겨지지 않은 상처나고 더렵혀진 나를 스스럼 없이 안아주는 따스함이다. 

원로가 말했다. "염려하지 않는 것과 침묵과 내밀한 명상은 순결을 낳는다." (ch 5 , 29) 

/ 임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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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연필

장명등을 밝히는 사람들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와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 <사막교부들의 금언집>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신 분이나 제가 언급한 것 외의 다른 한국어 번역본들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링크에 게시된 이강학 교수님의 글을 참조하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강학 목사님은 두란노와 분도출판사의 번역본을 추천하시네요.^^

    http://cafe.daum.net/spiritus/cDyN/70?docid=1KV3mcDyN7020120402093840

    BlogIcon 바람연필 2014.02.04 04:39 신고

2013년 8월의 추천 고전

장명등을 밝히는 사람들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와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시간을 '때우기 위해' 교회 북까페의 책장을 기웃거리다가 반가운 제목을 발견했다. 이전에 어디선가 광고를 보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인데, 이곳 태평양 바다 건너편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은 평소 좋아하는 작가이고, 지리산도 스무 살 때 무거운 배낭 위에 텐트까지 얹어서 기다시피 올랐던 '지리산 등반대'의 초록빛 추억이 깃든 산이다. 게다가 평소 제법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교'에 관한 글이라 책 제목을 보는데 군침이 막 돌았다. 그러나 책장을 몇 장 넘기지 않아도 이 책이 나의 예상과 달리 '교육'에 관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발견은 나에게 실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인터넷에서 찾아본 출판사의 소개글처럼, 이 책은 "지리산과 섬진강 주변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책으로 묶여지기 전에 <경향신문>에 약 9개월 동안 연재되었던 글이며, 책으로 출간된 이후에도 <MBC 스페셜>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방영되었다고 한다(2011년 3월 4일).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이야기 속에 나온 사람들의 집이나, 이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지리산학교'를 찾는 방문객이 많다고 하니 가히 세간에서 화제가 되었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제서야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고 앉아 있으니, "쯧쯧!" 수 년 동안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무지'와 지금의 '뒷북'에 대한 핑계가 될까? 


      어쨌든, 이 책은 다 '먹어 치우는' 데에 하루가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이 책이 참 '맛있는' 이유는 먼저 이 책의 등장인물이 영위하고 있는 지리산 산골마을과 섬진강변에서의 삶이 세속적인 도시 생활과는 다른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던져 주기 때문이다. 이들이 도시를 떠나 지리산으로 온 이유는 각각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부를 욕망하는 삶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사람, 생명, 평화를 사랑하는 삶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삶을 사는 데에 많은 돈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적게 벌고, 적게 쓴다. '최 도사'라는 인물은 일 년에 몇 달 시내의 마트에서 주차 관리 요원으로 일해서 번 '연봉 200만원'으로 일 년을 충분히 산다. '낙장불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원규 시인은 방문객들을 위해서 자신이 사는 집을 통째로 비워주기도 한다. 공지영 작가의 손을 거쳐 맛깔나게 쓰여진 이들의 이야기는 행복을 찾기 위해 유형, 무형의 것들을 자꾸만 소유하려고 발버둥치는 도시인들에게 참된 행복은 오히려 소유가 아니라 욕심을 비우고 생명과 사람, 평화를 사랑하는 삶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이야기가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인물들이 취한 의미있는 '방향 전환'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처음부터 지리산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들이 아니라, 다른 도시 사람들과 비슷한 삶을 살다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어떤 계기로 인해 지리산 산자락과 섬진강변으로 옮겨간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사업에 실패해서, 어떤 이는 결혼 생활에 실패해서, 어떤 이는 보다 의미있는 삶을 찾아 지리산으로 향했다. 모든 사람들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각각의 인생에서 어느 순간 중대한 '방향 전환'을 해야할 때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디에서 살 것인지와 같은 '장소'의 문제는 나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된다. 내 나이 올해 마흔. 평균 팔 십 년을 산다고 생각했을 때 산술적으로는 인생의 반환점 언저리에 서 있다. 지리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조만간 있을) 커다란 인생의 방향 전환을 앞두고 내가 누구인지, 그래서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나에게 신선하고도 가치있는 질문들을 던져 준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이 책에 나오는 지리산 사람들은 도시를 떠났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떠나 보내지 않았다. 소문을 들은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그들의 집 대문을 넘나들고 있고, 특히 신문 연재와 책을 통해서 유명세를 탄 이후에는 이들의 이야기가 더욱 많은 이들의 입과 인터넷 사이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에 이 '지리산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 책의 영향력은 앞으로 당분간은 지속되리라 본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삶은 이 책 속의 함태식 옹에 대한 글로 요약될 수 있다. 함태식 옹은 1972년 나이 마흔에 지리산에 입산하여 노고단 산장을 열고 거의 40년 동안 피아골 대피소를 지키며 많은 조난객들을 구한 인물이다. 


"노고단 산장에 처음 가서 내가 호롱불을 만들어 현관에 달아놨어요. 근데 작은 호롱불빛이 말이야. 멀리 화엄사 입구에서도 보여. 등불이라는 게 그렇더라고 어둠 속에서 헤매던 사람들이 그걸 보고 찾아오는 거야. 길게 밝혀 준다고 그걸 장명등이라고 하지."


그의 말대로 빛이라는 게 그렇구나 갑자기 우리는 숙연해졌다. 작은 일도 지극해지면 생명을 살리는 등불이 되는구나. 장명등, 그것이 그의 삶이었다.


- 공지영,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서울: 오픈하우스, 2010), 57-58.


장명등(燈), 어두운 밤 멀리까지 빛을 비추는 등불처럼, 기이하면서도 소박하고 진실된 지리산 사람들의 삶은 한 때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고, 도시 생활이 커다란 기계가 물질을 생산하기 위해 굉음을 울리며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 속의 삶 같은 한, 또 도시가 그 물질들을 소비함으로써 욕구를 충족하려는 소비자들로 가득 찬 백화점 같은 한, 이들의 이야기는 길게 한 줄기 빛을 비춰주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장명등을 밝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로마제국에서의 기독교 공인(313년) 이후 세속화되고 타락해진 기독교 신앙을 벗어나 마음의 순전함(purity of heart)을 얻기 위해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지의 사막으로 들어간 4~5세기의 '사막의 수도자들'(Desert Fathers and Mothers)이다. 공지영 작가도 그녀의 책에서 지리산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사막 교부들이 떠오른다고 쓰고 있다. 그만큼 지리산 사람들과 사막의 수도자들은 여러 가지 비슷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먼저 이들은 모두가 순수성을 잃고 점점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번잡한 도시 생활로부터 벗어나, 지리산/사막에서 단순하고 진실한 삶을 살며 그 속에서 참된 자아의 발견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더불어 이들이 물질을 소유하는 것보다 비움과 가치 추구를 통해서 행복을 발견하려 한다는 점, 이들이 도시를 떠났지만 도시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배우기 위해 몰려 온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삶이 하나의 '장명등'이라는 점들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공통점이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천오백여 년이라는 시간의 간격보다도 더 큰 차이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둘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도 아니고 바람직하지도 못하다. 하지만 지리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옛날 사막 수도자들의 삶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만 짚고 이제 본격적으로 사막 수도자들의 이야기로 넘어 가려고 한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은 주로 4~5세기에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의 사막에 살던 수도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이집트의 안토니우스(Antonius of Egypt)를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훈련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사막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주로 평신도들이었으며, 그 중에는 글을 알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어떤 이들은 혼자 동굴이나 무덤 등지에서 기거하는 은둔자(hermit/anchorite)로 살기도 하였고, 삼삼오오 모여 살기도 했으며, 경우에 따라 대규모의 사람들이 모여 공동생활(cenobite)을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가장 활발했을 때는 '사막을 도시로 만들었다'고 묘사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이집트의 사막에서 수도 생활에 자신을 내던졌다.


      당시 사막에서는 많은 경우 제자들이 스승과 함께 거주하며 수도 생활을 배워 나갔는데, 그들의 배움과 훈련 방법은 스승의 강론을 듣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스승의 삶을 관찰하고 따라서 실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씩 외부에서 찾아온 방문자들이나 제자들이 스승에게 질문하거나 "아버지여(abba, 여성의 경우는 amma),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 가르침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 책에 수집된 이야기들은 이와 같은 경우 영적 스승들이 남긴 짧은 가르침들 또는 이들과 관련된 짧은 일화들이다. 이 가르침들과 일화들은 구전과 기억을 통해서 전해져 오다 첫 세대의 위대한 영적 스승들을 알지 못하는 다음 세대의 수도자들을 위해 그 일부가 기록으로 남겨졌다. 


      이 사막의 수도자들의 이야기들이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며 전해져 내려오는 이유는, 이들의 가르침이 어떻게 하면 금욕생활 또는 수도생활을 훌륭하게 수행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기 위하여 금식과 철야, 그리고 여러가지 고행을 하기도 하였지만 고행 그 자체가 그들의 관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혜로운 스승들은 지나친 고행은 수도자를 교만하게 하여 수도생활의 본질을 흐릴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어떤 형제가 한 은둔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금식을 해야 합니까, 육체노동을 해야 합니까? 철야를 해야 합니까, 선행을 베풀어야 합니까?"


은둔자가 대답했다. "분별력을 가지면 이 모든 것들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소. 많은 사람들이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고 있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까닭은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오. 오랜 금식으로 입에서 가시가 돋고, 말씀을 다 배워서 알고, 시편을 암송한다 해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가 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겸손과 사랑이오." 


- 사막 교부들 지음, 배응준 옮김, 《깨달음》(The Desert Fathers: Sayings of the Early Christian Monks), (서울: 규장, 2006), 199. 


      그렇다고 해서 사막의 수도자들이 늘 소위 '영적인' 이야기, 또는 실제 생활과는 관련이 없는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를 하고 산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화가 있다. 한 은둔자가 포에멘(Poemen)의 명성을 듣고 그를 만나러 왔다. 포에멘은 기뻐하며 그를 자신의 움막으로 맞아 들였고, 두 사람이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그 은둔자가 "성경과 영적인 것들과 하늘에 속한 것들"에 대하여 말하였으나 포에멘은 다른 곳으로 얼굴을 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당황한 은둔자가 밖으로 나와서 포에멘의 제자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그 제자가 포에멘에게 들어가 그 이유를 물었다. 포에멘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아래에 속한 사람이라 땅의 것을 말하는데, 그 분은 위에 속한 사람이라 하늘의 것들만 이야기하지 않소? 만일 그 사람이 영혼의 격정에 대해 말했다면 나도 기꺼이 대답했을 것이오. 하지만 그는 영적인 것들만 말했소. 나는 그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오.

-《깨달음》, 173.

 

이 대답을 전해 들은 은둔자가 다시 포에멘에게로 들어가 자신이 씨름하고 있는 정욕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고, 그는 포에멘의 대답을 듣고 깊은 감화를 받고 돌아갔다. 이 일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막 교부들의 이야기에는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과 인간적인 욕망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은 사막 수도자들의 옛날 이야기일 뿐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 인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난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이 책을 다시 읽다가 얼굴이 자주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약 1600여 년 전의 이야기들이 최근의 나의 어리석고 악한 마음과 행동들을 환하게 들추어 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이 책이야 말로 기독교 영성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속에 기록된 이야기들이 모든 시공간을 초월해서 적용되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특정한 인물들에게 주어진 가르침들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가르침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 던지는 나쁜 생각들에 주의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의지를 따르면서 그것이 악마들이 공격이라고 핑계대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쭉 읽어 내려가기보다는 중간 중간에 쉬어가며 충분히 묵상하고, 가능하면 주위의 벗들과 깨달은 내용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할 때 책 속의 내용들을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그 옛날 사막의 수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할 가르침으로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의 수도자들의 이야기들은 여러 문헌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인 가르침들을 담고 있는 것은 구전되는 이야기들을 압바(암마)들의 이름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모은 편집본(Alphabetical Series)과 주제별로 모은 편집본(Systematic Series) 이 두 가지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편집본들에서 이야기들을 추출하여 하나의 책으로 엮은 라틴어 선집 Verba Seniorum도 존재한다. 이 책의 영향력을 증언하듯이 한국어로도 여러 가지 번역이 나와 있다. 그러나 현재 필자가 해외에 거주하면서 이 모든 번역들을 두루 검토하고 좋은 번역을 추천할 수 없는 점을 독자들께 양해를 구하고 싶다. 다만 현재 우리집 책꽂이에 꽂혀 있는 한국어 번역본은 규장에서 《깨달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것인데, 이 책은 펭귄 클래식스(Penguin Classics) 시리즈의 The Desert Fathers: Sayings of the Early Christian Monks 이라는 영어 번역본을 다시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이 영어본은 베네딕타 워드(Benedicta Ward)가 Verba Seniorum을 대본으로 옮긴 것으로 매우 공신력 있는 텍스트이다. 하지만 규장의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영어본에 있는 워드의 뛰어난 서문은 물론, 본문도 중간 중간 적지 않게 생략되어 있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장(chapter) 순서도 뒤바뀌었는데 매우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시원한 활자와 삽화가 이정선의 영감 있는 그림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 잡고 읽고 싶게 만들며, 중간중간 묵상할 수 있는 휴지(止)도 다는 점에서 위로를 삼는다. 


       한국은 아직 무더위가 한창이지만, 이곳 버클리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지리산 단풍만큼은 아니지만, 오늘 아침 산책길에 본 나무에 벌써 옅은 빨간 물이 흠뻑 들었다. 공지영의 책에 나오는 지리산 사람들도 그렇고 사막의 수도자들도 모두가 같은 색깔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아니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소박하면서도 참된 삶을 추구하고, 창조주가 디자인한 대로 각각 다양한 색깔의 잎사귀를 내는 사람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번 가을, 영성 고전 독서를 통해서 아름다운 삶, 순전한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기도하고, 실천하자. 그리하여 자신과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빛깔로 삶이라는 잎들을 물들여 가자. 우리 모두가 희망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어두운 세상에서 각각 단풍빛의 장명등을 밝히는 사람이 되자.


지리산은 그 모든 골짜기 구석구석마다 다른 빛깔로 각기 다른 사람들을 품고 있으니까 말이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26.

/ 권혁일



지리산 행복학교

저자
공지영 지음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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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이 두려움을 넘어설 때 우리는 지리산 행복학교로 간다.어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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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저자
사막교부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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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 | 2006-10-30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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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깨우침을 주는 참스승, 사막의 은자들! 사막 은자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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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저자
두란노아카데미 편집부 지음
출판사
두란노아카데미 | 2011-02-0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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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교부들의 금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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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라지오와 요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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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도출판사 | 1999-08-14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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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앙생활 교양서.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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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sert Fathers: Sayings of the Early Christian Monks (Paper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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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d, Benedicta (EDT)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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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guin USA | 2003-08-0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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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dom of the Desert

저자
Merton, Thomas (Author)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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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Directions | 1970-06-0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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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연필

이성적인 사색보다는 경험적인 언어로서의 '기도'

한 줄 묵상 2013.05.14 03:29

사부교부 마카리우스는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단지 그대의 두 손을 펴고서 '주님, 당신이 잘 알고 계시오니 당신의 뜻대로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하라. 만일 갈등이 더 치열해지면, '주님, 도와 주소서'라고 하라.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잘 알고 계시며,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 The Sayings of the Desert Father: The Alphabetic Collection, trans. Benedicta Ward. 131.의 글을 <기독교 영성 I> 제 16장 638에서 재인용.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모든 몸 짓은 '영스러운 것'이다.   

이 영은 가둘 수 없다. 제한 할 수 없다. 흐르는대로 움직이게 해야한다.

기도만큼 자유로운 영의 활동이 있을까? 

언어로 전통으로 교리로 가두는 순간,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여행'이 아닌 인간을 향한 '부담'이 되어 다가온다.


기도에는 정밀한 규칙이 필요없다. 기도에는 귀를 간지럽히는 언어유희가 필요없다.

기도는 살아있는 인격을 만나기위한 내 인격의 몸부림만 필요한 것이다.


많이 말하려하지 말라.

그냥 여기 있다고..

그냥 힘들다고..

그냥 도와달라고.. 말하라.


내 영이 흐르면 그 곳에 닿는다/ 나무 잎사귀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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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눈물로 적셔진 사막(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한 줄 묵상 2013.02.13 20:46
  • "[사막의] 교부들이 기도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기도의 은혜는 항상 눈물이라는 선물이었다. 양심의 가책(compunction)에서 나오는 눈물, 사랑에서 솟아나는 눈물."

    - Thomas Merton

    BlogIcon 바람연필 2013.02.14 08:53 신고

어떤 원로가 말하기를 "우리는 육체에 그림자를 어느 곳이든 달고 다닌다. 


그와같이 눈물과 슬픔을 어디서든지 지니고 다녀야 한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주제별>>, ch.3, 24.


신앙 수련회를 가게되면 "반드시 챙겨야 할 물품"이 있었다.

성경, 찬송, 필기도구, 세면도구 ......


기독교 신앙 생활 전반에도 비교적 널리 인정 받고있는 필수품들이 있다.

주일성수, 헌금생활, 금연, 금주 ......


제법 규모가 있는 교회들이 찾고 있는 목회자들 중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건들 중 하나가 박사학위라고들 한다.


사막 수도자들이 그림자처럼 붙이고 다녀야 했던 필수품 무엇이었을까?

"영혼의 애통함 (penthos)"이었다. 


외로워서도, 

삶이 고생 스럽고 신세가 처량해서도 아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서 보면 그저 눈물이 났던 것이다.


끊임없는 죄스러운 모습 때문에 

죄송하여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를 만나 주신다는 사실에 

고맙기도하고 감격스럽기도 하였다.


눈물......

냄새나는 자신에 대한 눈물, 

지독한 사랑에 대한 눈물.


사막,

빗물은 말랐지만

눈물은 끊이지 않았다.

사막에 홍수가 났다면

이 눈물의 홍수였을 것이다.


나의 신앙생활에 꼭 따라다니는 것이 무엇일까?

오늘 교회에 홍수처럼 넘쳐나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만나자.

눈물이 저절로 나올터니......


/오래된 오늘



구글+ '산책길'

Via the Living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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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꽃을 피우라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한 줄 묵상 2012.09.25 16:22

한 형제가 한 은수자에게 물었다. '제가 할 수도 있고 또 삶의 지침이 될만한 선한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 은수자가 이르기를, '하나님 한 분만이 무엇이 선한 지를 아신다네. 하지만, 안토니의 친구인 대 니스테로스에게 어느 은수자들 중의 한 분이 이처럼 물었다는 것을 들었다네. '어떤 선한 일을 행해야만 할까요?' 그러자 그가 답하기를, '사실 모든 일들이 동일하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던가? 성경에 이르기를 아브라함이 손님을 환대하였기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고, 엘리야는 고요함을 좋아하였기에, 그리고 다윗은 겸손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셨다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가운데 그대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알아야하네. 그리고 그것을 행하고 그대의 중심에 평화가 깃들도록 하게.'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주제별)》Ch. 1. 11.




여태껏 참여해 온 침묵리트릿 때마다 매번 마주쳐온 질문이지만, 들을 때마다 큰 울림을 안겨다 준 것이 있다. 그 질문은 "What do you want?" 이다.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지금까지 정신없이 걸어 왔던 삶의 발자국을 되돌아 보게 되고,  또 거칠고 가쁜 숨을 조용히 가다듬으며 앞으로 내디딜 발걸음을 생각하게 된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예루살렘을 향한 '같은 길'을 비록 걸었지만, 그들이 걸었던 영혼의 길은 예수님과 판이하게 달랐던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된다 (막 9:30-37). 예수님은 '십자가와 죽음'이라는 길, 곧 낮아져야지만 또 하나님의 뜻 안에 있어야만 걸어갈 수 있는 길을 걸으셨다. 반면에 같은 노정에 있던 제자들은 '내가 더 높아지는 길' 즉, 종교적, 사회적 신분상승을 위한 길을 걷고 있었다. 예수님의 갈망과 제자들의 갈망은 이처럼 달랐다. 제자들은 넓은 길, 상승의 길을 꿈꾸며 서로 경쟁하며 다투었고, 예수께서는 좁은 길, 죽음의 길을 내다보시며 그 중심에 깊은 평화를 누리고 계셨다.  


나는 외견상 '목사' 그리고 '영성학 박사학생'이란 간판을 가지고 예루살렘길을 걷고 있다. 오늘 금언을 통해 다시금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길이 아니라, 이 여정을 위해 내 가슴 보따리에 무엇을 싸짊어지고 있느냐 이다.


                 "What do you want?"  또는  "What is your deepest desire?"  


하나님안에서 이 질문을 하고, 답을 찾으며, 또 그 답에 걸맞는 삶을 살지 않는 이에게는 예수님께서 누리셨던 평화가 주어지지 않음을 새삼 깨닫는다. 제자들처럼 상승의 길을 꿈꾸면, 불안과 염려 그리고 분노와 경쟁심이 인생의 동력으로 자리잡게 됨을 본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걸었던 길가에는 갖가지 꽃들이 계절을 따라 피어 있었다. 자기 나름의 또는 자기만의 꽃을 피워올려 '그 길(The Way)'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길'에 동참하는 방법은 자기만의 꽃을 충실하게 피워내는 것임을 꽃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오래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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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감사하라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한 줄 묵상 2012.09.18 07:48
  • 시험은 지나가면 간증으로 담담히 말할 수 있지만 현재 진행형 일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기 때문에 시험인 것 같아요. 시험 중에 감사하는 것과 시험을 겪은 후에 감사하는 것...점점 더 그런 차이가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하고, 겸손케 하기도 합니다. 가끔씩 목사님 선하고 밝은 표정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 목사님의 삶과 신앙의 깊이를 측량하곤 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BlogIcon 소리벼리 2012.09.18 14:44 신고
  • 정목사님의 묵상이 제게 격려가 됩니다. 그리고 저에 대한 말씀에는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실상은 그렇지 못하구요.... 지난번 모임 때, 책 정하는 순서를 양보하시는 목사님 모습에 사실 감명을 받았었지요. 한 송이의 꽃을 보았지요.^^

    BlogIcon 오래된 오늘 2012.09.19 05:42 신고

테베의 요셉(Joseph of Thebes)이 이르기를,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을 만한 세 가지 때가 있습니다. 첫째는 어떤 병약한 사람에게 시험들(temptations)이 닥쳐올 때 그러한 것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때입니다. 둘째는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인간적인 동기 같은 것을 혼합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그저 순수하게 하는 때입니다. 세 번째는 제자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영적인 아버지께 순명하는 때입니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주제별)》Ch. 1. 9



나에게는 아픈 딸이 있는데, 글을 통해 '육신이 아파서 찾아오는 시험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다 보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자신이 힘든 상황에 몰입되어 있다가 보면, 먼저는 어떤 것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험거리들인지 분별하고자 하는 의욕조차 상실되는 것을 나는 체험한다. 더 나아가, 병든 상황 자체를 하나님 안에서 좀 떨어져서 바라보는 '영적인 객관화 작업'이 이러한 시험들을 분별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줄 알면서도 쉬운 일이 아님을 또한 절감하고 있다. 


이같은 나 자신에게 "병약할 때 닥치는 시험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라"는 금언은 그래서 오늘 내게 큰 도전과 울림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 오래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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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꽃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한 줄 묵상 2012.09.10 02:00
  • 일반적으로 '머리가 커질수록' '겸손과 열려있음'이 반비례하는 듯 합니다. 굳이 '일반'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제가 그렇습니다.

    BlogIcon 바람연필 2012.09.11 13:48 신고
  • 과거는 (잘한 것이든 잘못한 것이든) 잊고, 몸--혀와 배--을 다스려 영을 얻으라는 말씀으로 듣습니다.

    BlogIcon 산처럼 2012.09.11 14:55 신고
  • 영성 공부는 하면 할 수록 정말 영과 육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게 우리 모임의 취지겠지만요....

    BlogIcon 소리벼리 2012.09.12 07:31 신고

"팜보(Pambo) 교부가 안토니 교부에게 물었다. ‘제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러자 연로한 안토니가 말하기를,


그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것에 신뢰를 두지 마시오. 지나간 과거를 염려하지 마시오. 그러나 말(tongue)과 육욕(stomach)을 통제하시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주제별)Ch. 1. 2.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에 실린 이야기의 대부분은 많은 대중들을 앞에 두고서 행해진 대화나 가르침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고도 개별적인 정황에서 펼쳐진 것이었다. 팜보교부는 안토니 교부(Saint Anthony)에게 자신의 삶에 필요한 실제적인 가르침을 청한다. 그러자 안토니는 제일 먼저, 자기 나름의 의(own righteousness)에 기대지 말라고 그에게 가르침을 준다한 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잘난척 하지 말라는 것이다사막까지 와서 그토록 수행에 힘써 온 팜보 교부로서는 기분 상하기 딱 쉬운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자세히 알 길은 없지만, 그에게 너무나 시의적절한 말이었는지 모른다

 

주변에 소위 영적 훈련에  있어서 많은 경험과 수고를 하신 분들 가운데, 가끔씩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가 하나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더 낮아지려고 동원한 그 행위들이 오히려 '하나님' 없이 '자신'이 높아지는 일에 쓰여지게 된 것이다.

 

 팜보 교부는 후에 안토니와 더불어 다른 사막 수도자들로부터 본받을 만한 대표적 수도자로 언급되기도 한다(1). 가르침과 교훈은 일방적일 수 없다. 안토니 교부에게 사랑이 없었으면 위와 같이 아프지만 꼭 필요한 조언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젊은 팜보에게 겸손과 열려있음이 없었다면 이같은 교훈을 자신 영혼의 살과 뼈로 수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이처럼 오늘 만남의 배경에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모두의 성숙된 영적인 토양이 있었다. 아름다운 영성의 꽃이 메마른 사막에서 피었다. / 오래된 오늘 

  

(1) The Sayings of the Desert Fathers (The Alphabetical Collection), trans. Benedicta Ward (MI, Kalamazoo: Cistercian Publications, 1987),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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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한 줄 묵상 2012.09.03 20:14
  • 저 갈증이 시원한 냉수처럼 와 닿는 것은 왜 일까요? 오늘 우리의 목마름은 저 갈증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해봅니다.

    BlogIcon 산처럼 2012.09.04 05:11 신고
  •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아래로 펼쳐진 깊은 사막과 산맥을 보았습니다. 만약 비행기가 저 아래로 떨어져서 기적적으로 살아난다고 해도, 저 사막에서는 얼마 버티지 못하겠지라는 상상을 했보았어요. 상징적인 사막이 아니라, 죽음의 위협이 실재하는 사막으로 들어간 그들의 열망과 용기, 그 갈증과 치열함을 얼마나 닮아 갈 수 있을까요?

    BlogIcon 바람연필 2012.09.04 15:51 신고

❝ 누군가가 안토니 교부에게 물어 보았다. 


  '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마땅히 

  어떤 삶을 살아야만 하겠습니까?'


-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The Sayings of the Desert Fathers), ch 1, 1 




이 질문은 컴퓨터 자판 두들기는 소리로 가득찬 신학교 교실에서 던져진 것이 아니었다. 교회 커피샵의 그룹성경공부 시간에서도  아니었다. 


4세기경에 타는 발걸음으로 사막까지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빵과 물"을 우선적으로 챙기기 보다는 이같은 "거룩한 질문"을 서둘러 챙겨 길을 나선 사람들이었다. 한마디로 "목마른 사슴들"이었다. 사막 한 가운데서 던져진 이 질문 앞에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이들의 깊-은 갈증을 읽을 수 있어야만 한다. 


타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메마른 사막에 들어온 사람들,


존재의 부요함을 위하여 혹독한 가난을 스스로 거머쥔 사람들,


진실된 만남을 위하여 홀로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사람들,


참된 대화를 위하여 침묵을 추구했던 사람들,


이들의 심장은 달아오른 한 낮 사막의 지표마냥 뜨거웠었다.


오늘 우리가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을 펼치며 가장 먼저 이 갈증과 치열함을 읽어내지 못하면 결국 덮어놓고 읽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고 말것이다.     / 오래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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