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폐지는 교회의 의무이다 (토마스 머튼)

한 줄 묵상 2015.08.16 16:53

따라서 우리의 의무는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해서 교회가 진정으로 전쟁을 폐지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 토마스 머튼 지음, 조효제 옮김《머튼의 평화론》(분도, 2006), 272.


며칠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일명 "킬러 로봇(Killer Robot)"이라 불리는 공격용 전투 로봇 도입에 관해 토론하는 것을 보았다. 다양한 찬반 의견들이 있었는데, 공통된 것은 모든 패널들이 '전쟁이 필요하다'는 대전제 위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었다. 오늘날 전쟁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세상 속에 들어와 있다. 국제적, 민족적 분쟁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서 전쟁에 대한 '인기가 식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오락(entertainment), 곧 영화나 게임, 심지어 아이들의 장난감 속에도 전쟁은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토마스 머튼에 의하면 전쟁은 폐지되어야 한다. 특히 핵무기와 화화무기 등과 같은 대량살상무기로 인해 인류가 대재앙 속에 빠질 위험이 현존하는 오늘날, 교회는 가능한 모든 힘을 다해서 전쟁 폐지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실제적으로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간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의무이다. 


최근 광복 7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남북이 분단되어 휴전선에서 지뢰가 폭발하는 오늘날, 일본이 평화헌법을 수정해 동북아에서 무력 행사를 정당화하려는 이 때에, 우리 한국 교회는 무엇을 해야할까? 분명한 것은 '민족정신' 또는 '애국심'이 다른 이들에 대한 증오를 유발하여 전쟁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왜곡되지 않도록 교회가 깨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휴전(休戰)을 넘어 종전(終戰)이 이루어지고, 나아가 동북아에서 전쟁이 폐지되도록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모든 힘을 다해 구체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 권혁일


<상생의 손>, 포항 호미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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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가장 완벽한 규칙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한 줄 묵상 2015.06.23 09:34

그리스도교의 가장 완벽한 규칙, 정확한 정의, 절정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이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을 수는 없다.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Johannes Chrysostomus). 칼리스토스 웨어(Kallistos Ware, 1934- )의 《정교회의 길》(The Orthodox Way), 엄성옥 옮김(은성, 1999), 60쪽에서 재인용.


칼리스토스 웨어는, 여기에 인용한 크리소스토무스의 말이 삼위일체의 교리가 지닌 실질적인 함의(含意)이며, 이것이 삼위일체의 삶을 산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라고 말한다. 곧, 그리스도인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은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웨어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심을 알기 때문에, 각기 상대방을 위해서 그리고 상대방 안에서 희생적인 삶에 헌신한다. 우리 각 사람은 실질적인 봉사, 적극적인 긍휼의 삶에 헌신한다.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 때문에,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부터 고도로 조직화된 차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원에서 온갖 형태의 학대와 불의와 착취에 대적하여 싸워야 할 의무를 가진다. 사회 정의와 인권을 위한 싸움에서, 우리는 특별히 성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행동한다.” / 남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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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의 고백 (아빌라의 테레사)

한 줄 묵상 2015.04.09 22:05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자기를 못 믿고 두려워하는 생각이 더 큰 법입니다. 받는 은혜가 크고 보면 자기 자신의 가엾은 모습이 돋보이고, 자기의 지은 죄가 더욱 커 보이는 것, 그러기에 저 세리와 같이(누가복음 18장 13절) 감히 눈을 쳐들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c. 1515-1582), 《영혼의 성(The Interior Castle), 일곱 번째 성채, 3장. 14절.


부활절의 노래는 너무나 부르기 쉽고 그날의 축제는 이내 '나'의 것이 되고 말때가 많다. 사순절의 기나긴 어둔 밤은 지루했고 참기 힘들었으며, 남의 것 아니면 저 예수의 것으로 생각해버리고 싶은 유혹은 매해마다 되풀이 된다. 

그러나 십자가와 그 길에서 멀어질수록 부활의 기쁨은 밋밋해지고 부활절도 그저 연례행사로 그쳐버리기 쉽다. 참된 부활은 자기 부인이라는 죽음 이후에 오는 것이며, 받은 은혜를 고백할 수 있는 죄인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적어도 가슴을 치며 괴로워하는 세리는 주님을 만나고야 만다. 십자가에 오르신 주님, 이제 부활하셔서 "평화"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다. 그 만남 안에서 용서받은 죄인, 이제 의인으로 거듭난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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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결혼 안에서 평안 (아빌라의 테레사)

한 줄 묵상 2015.03.11 17:10

영적 약혼은 이와[영적 결혼과] 달리 흔히 서로 갈라지는 수가 있습니다. …… 하지만 영적 결혼의 은혜에 있어서는 이렇지 않습니다. 영혼은 항상 그 중심에 하나님과 같이 있기 때문입니다. …… 하늘에서 강이나 우물로 떨어지는 물과 같이 똑같은 물이 되어버려서, 강물과 떨어진 물을 나눌 수도 따로 갈라놓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c. 1515-1582), 《영혼의 성(The Interior Castle), 일곱 번째 성채, 2장. 4절.


아빌라의 테레사는 한 영혼이 하나님과의 사랑의 연합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일곱 단계로 나누어 자세히 그려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내면의 성 안에서 영혼은 하나님의 신부로 발견된다.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혼인 상태인 자신의 영혼을 발견하게 된다.

테레사는 이 연합이 하늘의 물이나 땅의 물이 하나와 같은 것처럼 분리될 수 없는 온전한 상태라고 말한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14:27)고 말씀하신 대로 평안한 상태이다.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능력, 감각, 감정은 이 평화 속에 있지 못할 때라도 영혼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평안 안에 거하는 것이다.

이것은 부활하신 신랑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며 평화이다. 나의 생각이나 행위로 깨뜨려질리 만무한 연합이며 결혼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평화로 발견된다. 우리 영혼은 결혼 안에서야 사랑이 완성되리라 생각하며 연예와 약혼 그리고 그 결혼까지 나아가려 하지만 주님은 이미 우리와 결혼하기로 하셨다. 그 온전함 안에서 평안이며, 영원한 평화다. 주님, 오늘도 그 사랑과 평화 안에서 발견되게 하옵소서작은소리찾기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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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신비: 우리는 이리가 아닌 양이다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

한 줄 묵상 2014.10.23 09:25

적들의 마음을 바꾸어서 그들로 하여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 그들을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좋고 놀라운 일이다. 특히 [사도들은] 오직 열두 명인데 세상은 이리들로 가득 차 있었음을 생각하면 이것은 더욱 분명하다. 사도들과는 아주 다르게 행동하고 우리의 대적들을 향해서 이리들과 같이 돌격하는 우리 자신을 우리는 수치스럽게 생각해야한다. 우리가 양이기만 하면 승리는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리라면 우리는 패배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 목자의 도움은 우리로부터 떠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양을 먹이지 이리를 먹이지 않는다. ……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어린 양을 먹는 이리가 된다면, 양과 같이 초장으로 인도함을 받고서 노략질하는 사자처럼 행동한다면, 뭐라 변명할 수 있겠는가? 이 [성찬의] 신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는 폭력으로부터만이 아니라 모든 원한으로부터, 비록 그것이 아주 가벼운 것이라할지라도, 깨끗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평화의 신비이다.

-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Johannes Chrysostomus: c.347-407), "마태복음 설교" 33장.


우리의 대적 마귀가 그리스도인들을 충동하여 폭력을 행하게 하는 것을 우리는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이리들은 양을 잡아 먹음으로써가 아니라, 양을 도발하여 이리가 되게 함으로써 승리를 쟁취한다. 그러므로 목자되신 주님의 양인 우리는 우리를 도발하는 모든 폭력에 철저히 비폭력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내적인 원한까지도 깨끗해져야 한다. 진정 사람을, 나아가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 박은 비폭력이다. 비폭력의 십자가로 세상의 폭력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성찬을 받을 때마다 이 평화의 신비를 기억하자. /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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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3) : 머튼 백과사전 외

2014년 7월의 추천 도서


토마스 머튼 윌리엄 쉐넌 (3)

머튼 백과사전


*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

   (1) 고요한 등불(Silent Lamp)  http://spirituality.co.kr/258

   (2) 토머스 머튼: 생애와 작품(Someting of a Reble) http://spirituality.co.kr/282

   (3) 머튼 백과사전 (The Thomas Merton Encyclopedia) 외

   (4) 파라다이스 여행과 내적 체험 (Paradise Journey & Inner Experience) : 2014년 8월15일


지난 달에 이어 이 달의 추천 도서로 윌리엄 쉐넌(William H. Shannon, 1917-2012)이 쓰거나 편집한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 서적들을 몇 권 소개하고자 합니다. 



1. 토마스 머튼 백과사전 (The Thomas Merton Encyclopedia. Maryknoll, NY: Orbis, 2002.)

      한 인물에 대하여 이런 백과사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그리고 연구의 가치가 있는 인물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수도자, 작가 그리고 영적 지도자인 토마스 머튼은 많은 저작물들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매우 독특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글들은 여러 매체에 중복해서 출판되기도 하였고, 지금도 계속해서 새롭게 출판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생각과 저술 주제는 개인적인 성장과 더불어 계속해서 변하고 발전하였습니다. 그래서 머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과 그의 글들의 탄생과 변화와 소멸을 제대로 '추적'하는 데에는 이 백과사전이 매우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머튼을 연구하는 학자들 뿐만 아니라, 머튼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어하는 열정적인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아직 한글로 번역되어 있지 않아서 한국에서는 제한적인 연구자들과 독자들만 이 책을 접할 수 밖에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 백과사전에는 (1) 머튼이 쓴 책들, (2) 그의 저술에 나타난 핵심적인 주제들, (3) 그의 삶에서 중요한 영향을 주고 받았던 사람들, (4) 그가 살았던 장소들에 관한 알찬 정보들이 알파벳순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윌리엄 쉐넌, 크리스틴 보센(Christine M. Bochen), 패트릭 오컨널(Patrick F. O'Connell)은 모두 국제토마스머튼학회(ITMS)의 창립멤버이며 회장을 지낸 탁월한 머튼 학자들입니다. 이들 중 연장자인 쉐넌은 이미 작고하였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여전히 머튼 연구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이 출판된 지가 이미 십여 년이 훌쩍 넘었기 때문에 2000년 대에 출판된 자료들은 반영되지 않았고, 그의 책의 해외 번역본이나 머튼이 수도원에서 한 강의가 녹음된 오디오 자료들은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출판되고 있는 그의 강의 자료들이 어느 정도 완간이 될 때, 이 백과사전도 업데이트가 되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2. 토마스 머튼의 편지 모음 (Collected Letters of Thomas Merton. 전5권.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s, 1985-1994.) 외

     한 인물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고 싶다면, 그가 쓴 일기와 편지 등의 개인적인 글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머튼은 수도원에서 참으로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머튼 유작 관리위원회에서는 윌리엄 쉐넌를 총편집자로 선임하여 그의 편지들을 주고 받은 사람들과 주제 등을 기준으로 선택하여 다섯 권의 묶음집으로 출간하게 하였습니다. 이 중 쉐넌은 첫 번째 책인 The Hidden Ground of Love: Letters on Religious Experience and Social Concerns Witness to Freedom: Letters in Times of Crisis를 직접 편집하였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틴 보센과 함께 이 다섯 권의 모음집 중 핵심적인 글들을 간추려서 Thomas Merton, A Life in Letters: The Essential Collection (2008)으로 출간하였는데, 이 축약본은 다섯 권의 편지 모음집들을 다 읽기 어려운 독자들에게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그는 머튼이 냉전 시대 때에 전쟁과 평화에 관한 주제로 쓴 편지들을 모은 Cold War Letters (2006)를 크리스틴 보쉔과 함께 편집하여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다음과 소개할 책과 함께 머튼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사상을 잘 보여 줍니다.


  


3. 평화를 향한 열정 (Passion for Peace)

     이 책은 머튼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에세이들의 모음집입니다. 윌리엄 쉐논은 전쟁과 평화에 관한 머튼의 에세이 23편과 머튼의 유명한 <평화를 위한 기도>를 묶어  Passion for Peace: The Social Essays 라는 제목으로 1995년에 출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시 축약하여 Passion for Peace: Reflections on War and Nonviolence라는 제목으로 2006년에 다시 독자들에게 내놓았습니다. 아마도 쉐넌이 이 책을 이렇게 축약본으로 재출간한 것은 위의 편지글 모음집의 경우와 같이 두꺼운 책을 다 읽기 어려운 일반적인 독자들을 배려한 것이라 추측됩니다. 그런데 약 반 세기 전에 쓰여졌고, 이미 출간되었던 책이 십여 년 후에 축약본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이 일종의 '고전(classic)'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20세기 중엽에 쓰인 머튼의 글들이 21세기 초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혜와 의미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서평은 필자가 영어로 쓴 졸고가 있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은 참조하시길 바랍니다.(http://nephesh.tistory.com/254)



4. 깨달음의 기도 (Silence on Fire : The Prayer of Awareness)

     마지막으로 윌리엄 쉐논은 머튼의 1차 자료(에세이, 편지 등)를 편집하거나, 머튼에 대한 2차 자료(안내서, 평전, 백과사전, 논문 등)를 쓴 것 외에도, 자신이 머튼의 글을 읽고 연구하며 얻은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고 신앙이나 삶에 대해 직접 쓴 책들도 여러 권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권이 한국에 《깨달음의 기도》(은성, 2002)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소개된 Silence on Fire : The Prayer of Awareness (New York: Crossroad, revised edition, 2000)입니다. 이 책은 관상에 이르는 침묵기도를 그 소재로 하고 있는데,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인 "깨달음의 기도"입니다. 여기서 쉐넌이 말하는 '깨달음'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현존(presence) 안에 있음을 '인식(aware)'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번역이 아주 흡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글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니 한국어 독자들에게는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 달에는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머튼의 관상에 대한 성숙한 사상이 담겨져 있는 The Inner Experience와 이 책에 대한 쉐넌의 해설이 담긴 Thomas Merton's Paradise Journey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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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잠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줄 묵상 2014.02.05 17:01

주님이 마음의 참된 평화요, 주님만이 안식이시요, 주님을 벗어나서는 모든 것이 괴롭고 불안합니다. 이 평안 가운데, 오직 그 안에서, 즉 유일하고 최고의 영원한 선(善)이신 주님 안에서 제가 잠을 자고 안식을 누립니다. 아멘. 


-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c. 1380–1471),  구영철 옮김,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울: 가이드포스트), 140.


요즘 잠을 푹 자지 못한다. 


스트레스가 있어서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고는, 

'평화'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맘과 몸에 평화를 잃었기에 제대로 자지 못한다. 


잔다는 것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 아닐까? 

평화롭게 안식에 들어가는 연습? 


어떤 이들이 죽을 때 평화로울 수 있을까? 

주님을 "유일하고 최고의 영원한 선"(the one, ultimate, endless good)으로 알고, 추구하고, 누렸던 이들이 아니겠는가. 

늘 "깨어있는" 이들 말이다. 


그래, 정신을 차리자. 

날은 가고 반드시 밤이 온다. 

낮에 "주님을 벗어나" 살았다면,  

밤에 자지 못하고 "괴롭고 불안"하리니. 


기도하자. 

잠은, 

구원처럼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기에. / 이종태


By Rudolf Eickemey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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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알기 위해 자신을 먼저 알라 (칼빈)

한 줄 묵상 2013.10.24 01:31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지식은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쪽을 모르면서 다른 한쪽을 알 수는 없다." 


존 칼빈 (John Calvin, 1509-1563) 《기독교 강요》(The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제1권, 제1장. 

 

종교개혁의 한 축에 서서 부패한 종교적인 제도와 맞서 싸운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처음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기 위해 먼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알아야 한다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우리 자신의 무지, 공허, 빈곤, 허약, 이보다 더한 것인 타락과 부패를 자각함으로써, 지혜의 참된 광채, 건전한 덕, 차고 넘치는 선, 의의 순결함이 오직 주 안에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신교 정신(Spirituality of Protestant)은  잘못된 인간 역사의 자각(knowing)에서부터 시작해서 믿음 안에서의 저항(Protest), 그리고 변혁(Transformation)에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미국 개신교 영성의 수업을 들으면서 미국 개신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사회 정의(Justice)에의 헌신이라는 것을 알고는 한국의 개신교와는 다른 이질감을 느낀 적이 있다. 오히려 우리는 언제인가부터인가 불의에 눈감고, 사회적인 부조리를 슬며시 인정하며, 이른바 신앙을 개인을 위한 안식처와 도피처로만 삼는데에 익숙해져 오지 않았는가? 신앙인은 불의를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불의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칼빈의 가르침처럼 먼저 자신의 무지, 공허, 빈곤, 허약, 불의를 자각해야 한다. 또한 내가 살아가고 있는 '나의' 사회의 불의와 부조리를 예민하게 인지하고 이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해야 자신의 변화, 사회의 변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한 개개인의 신앙과 용기가 모여 비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한다. 나와 나의 사회 가운데 계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소리벼리(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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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열매 4 : 평화와 기쁨 (컬른의 브루노/정호승)

한 줄 묵상 2013.09.13 02:53


실제로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이곳[사막]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만큼 그곳에 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덕의 씨앗들을 부지런히 재배하고 낙원의 열매들을 기쁨으로 먹으면서 말입니다이곳에서 우리는 눈(eye)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눈은 신성하신 신랑을 명료하게 바라 봄으로써 그로 하여금 사랑으로 상처입게 한 그 눈입니다. 그리고 그 눈은 맑아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쁜 여가를 보낼 수 있으며, 조용한 활동 속에서 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전투의 고생스러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운동 선수들에게는 간절히 기다리던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 보상은 세상이 무시하는 평화와 성령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른(쾰른)의 브루노(Bruno of Cologne, c. 1030 - 1101), Ep 2.2; Sch 88:82-85.


컬른의 브루노는 불모의 땅 사막, 어떤 위로도 자라지 않을 것 같은 메마른 곳에 역설적인 평화와 기쁨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경쟁과 다툼과 분주함을 통해 자아를 확장하고 욕구를 채우려는 "세상이 무시하는 평화"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도시의 현란한 유흥과 최신 과학기술에서 찾아내려고 하는, 그러나 결코 그러한 것들로는 대체될 수 없는, "성령 안에서의 기쁨"이다. 브루노의 시대에 이러한 평화와 기쁨이 '지리적인 사막'으로 옮겨 간 이유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실존적인 사막'을 쫓아 내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현대인들도 인간적인 의지와 힘으로 도시를 개발하여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도시 속의 사막을 없애려고 한다.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사막으로 담대하게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사막에 들어가는 자, 사막에 거하는 이들은 자신의 외적 자아와 또는 악한 영과 고생스러운 전투를 하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들이며(딤후2:3-4[각주:1]),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하나님의 운동 선수들"(빌3:12-14[각주:2])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막에서의 참된 평화와 기쁨은 이렇게 고생하고 수고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너무나 쉽게 즐거움을 누리려고 한다. 그러나 쉽게 얻은 즐거움과 평화는 아침 이슬보다도 더 빨리 사라지고 만다. 


이 글과 함께 정호승 시인의 <물 먹는 법>이라는 시를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역설적으로 목마를 때에는 오히려 소금 같은 사막의 모래를 마시라고 권하고 있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 절벽을 깨뜨려 마시는 물은 하나님께서 사막의 바위를 깨뜨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을 주신 사건(출17:1-8, 민20:1-13)을 연상시킨다. / 권혁일



물 먹는 법


목마을 때 오히려 사막을 마셔라

소금 같은 사막의 모래를 마셔라

목마른 낙타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걷다가

잠든 사막의 별을 마셔라

나는 오늘 사막에 떨어진 별 하나 주워

별 속에 출렁이는 바닷가

새들이 마시는 물을 마신다

새들이 알을 낳은 절벽을 깨뜨려

절벽의 물을 마신다


정호승, 《여행》(서울: 창비, 2013), 84.



  1.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본문으로]
  2.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3)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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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평화의 입맞춤 (길선주)

한 줄 묵상 2013.08.20 07:03

그리고 오늘 이후로는 "의는 평화와 입을 맞춘다." 하는 말을 기억하고, 정의의 기초 위에 서서 싸움할 자가 될 것 같으면 정의의 무대에서 평화의 막이 열리도록 "위로부터 손을 펴서 지배하소서!" 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개개인도 죄를 범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마음에 평화가 오지 않는 법입니다. 가정 안에 싸움이 있을지라도 의로운 자가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그 가정에 참 평화는 오지 않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오늘과 같이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어떤 곳이든지 불의한 까닭입니다. 이후 세계 역시 정의와 인도에 의하여 행하지 않으면 참말 평화는 오지 않을 줄로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는 것이지만 아무쪼록 여러분은 시편 85편 10절에 "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는 이 말로써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또한 구하시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바이올시다.


- 길선주 지음, KIATS 엮음,《길선주》한국 기독교 지도자 강단 설교 시리즈 (서울: 홍성사, 2008), 187-88.


가정과 국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정의가 바로 서야한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으로 유명한 길선주 목사는 "평화의 서(曙, 새벽)"라는 그의 설교에서 위와 같이 역설하고 있다. 이글은 3·1운동 직후인 1921년 7월에 출간된 《종교계 제명사 설교집》에 일제의 검열에 의해 일부가 삭제된 채 수록되어 있다. 그는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으며"라는 시편 85편 10절 말씀에 근거하여, 불의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정의와 인도(人道,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의 토대 위에 세우지 않는다면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저질러진 불의를 밝히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반성 없이 더 큰 거짓으로 잘못된 것을 은폐하고, 오히려 다른 이들을 모함하는 불의하고 비열한 몸부림도 거세다. 그리고 한 편에서는 이를 침묵으로 관망하거나, 명백하게 죄를 밝히지도 않은 채 선거에서 이기려면 어느 정도의 '작전'은 필요했을 것이라며 관대하게(?)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하고 있다. (아마 적지 않은 수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세 번째 부류에 들어가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미국 의회 연설에서 DMZ 세계평화공원 구상을 밝히고, 며칠 전 8·15 경축사에서 이를 북한에 제안하였다. 전쟁과 분단의 상징인 DMZ의 일부에 평화 공원이 조성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길선주 목사의 말씀처럼 먼저 불의를 바로잡고 정의를 굳게 세우지 않는 한 평화공원은 언제라도 전쟁과 갈등으로 폐쇄될 가능성이 높은 '정치쇼의 공연장'이 되고 말 것이다. 현재 불의의 힘을 빌어 탄생한 것으로 강하게 의심 받고 있는 (그리고 그 일부가 사실로 드러난) 박근혜 정부가 잘못된 것을 명백하게 밝히고, 이를 진솔하게 사과하며, 말 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환골탈태(換骨奪胎)하지 않는다면, 비무장지대 전체를 평화공원으로 조성한다고 하여도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참된 평화는 요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의 무대에서 평화의 막이 열리도록" 간절히 기도하라는 길선주 목사의 말씀이 더욱 뼈저리게 와닿는다. /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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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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