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참고 서로 위로하고 (토마스 아 켐피스)

한 줄 묵상 2016.05.09 15:41

다른 사람들의 잘못이나 그 어떤 약점을 감내하는 일에 있어서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대 또한, 다른 사람들이 참아주기를 바라는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도 자신을 원하는 바대로 만들어 나갈 수 없는 마당에, 어떻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대의 의사를 추종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c. 1380–1471) 지음, 구영철 옮김, 《그리스도를 본받아》(가이드포스트, 2009), 제1권, 제16장.


'가정의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고, 비록 '부부의 날'이나 '형제자매의 날'은 없지만, 오월은 가족들이 서로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는 때입니다. 그런데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고, 서로의 약점과 약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가정 갈등은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가, 또는 형제 자매가 서로를 자신의 뜻대로 바꾸려하거나 자신의 뜻만을 고집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정에서는 서로에 대한 고마움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불만과 분노가 차지하게 됩니다. 가족이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에게 상처와 스트레스를 주고 받는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사실 서로에 대해서 참아야 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다만 그렇게 실천하는 것이 잘 안 될 뿐이지요. 이런 점에서 토마스 아 켐피스의 조언은 우리가 귀담아 들을 만합니다. 그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가령 성격이 급한 남편과 우유부단한 성격의 아내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아내는 남편의 성급함을, 남편은 아내의 우유뷰단함을 서로 참아 주어야 합니다. 


또한, 토마스는 우리는 자신도 자신의 뜻에 원하는 바대로 완전히 바꿀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억지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르침과 권면을 일절 금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부모가 자녀의 나쁜 습관을 바로 잡기 위해 훈계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부모가 자신의 나쁜 습관을 성찰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는 본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자녀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가 없습니다. 


요약하면 토마스의 조언의 핵심은 '자기 성찰'에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약점이 많은 존재인지, 잘 변하지 않는 존재인지를 마음에 새긴다면 상대방의 약점과 변하지 않음을 인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약점이 많고 고집 센 자신과 함께 살아주는 배우자에 대한, 또는 아껴주고 인내해 주는 부모와 자녀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불평과 분노를 이기게 될것입니다. 토마스는 이것이 곧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 '서로 짐을 지는 것'(갈6:2)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타인의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을 서로 배워야 한다고 명하셨습니다. 

잘못이 없거나 짐이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 

오히려 우리는 서로 참고 서로 위로하는 동시에 돕고 가르치고 권면해야 합니다.


 /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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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수 없는 십자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줄 묵상 2016.02.13 14:33

그러므로 십자가는 피할 수 없다. 모든 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어디에 가든, 우리가 짊어지기 때문에 십자가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십자가는 우리와 함께 한다. 어디로 향하든지, 위든, 아래이든, 안에서든, 밖에서든, 당신은 십자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c. 1380–1471), 《그리스도를 본받아 12장. 십자가의 왕도.


어김없이 사순절이 돌아왔다. 
종교적 절기로 지나치기엔
삶의 주변에 흩어져있는 고통들이 다시금 
십자가를 가리킨다. 

 

신학공부 입문을 함께 한 동료 목사님의 사모님이,  
아직 험한 세상을 경험하지도 못한 세 아들을
남겨두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지난 3여 년의 투병 생활은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시간이었으리라.
그 과정을 먼발치에서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가까이서 바라보기엔 두려웠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 

십자가를 바라보기가 부담스럽다. 
내 삶이 편안해졌다는 신호일 터,
편안한 순간 또한 잠시라는 사실을
영성가는 다시 확인시켜준다. 

십자가를 직시하지 않으면
십자가는 두려움으로 남게 된다.
십자가를 직면하여 끌어안고
받아들이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진실한 면들을
받아들이게 될 지 모른다. 

편안과 안락이 축복이라 여기는
영적인 탐닉으로부터 벗어나
삶에 이미 충만한 십자가를 
인지하고 끌어 안을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십자가를 바라본다면.

 

십자가는 어디에서든 발견된다. / 구름 위 햇살 이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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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왕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줄 묵상 2014.04.07 06:30

십자가에 구원이 있고

십자가에 생명이 있으며

십자가에 보호가 있고

십자가에 위로가 있으며

십자가에 마음의 힘이 있고

십자가에 영혼의 즐거움이 있으며

십자가에 덕의 극치가 있고

십자가에 거룩의 완성이 있다. 


-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c. 1380–1471), 《그리스도를 본받아》, book 2, ch. 12 

("거룩한 십자가의 왕도(王道)에 대하여").


토마스 수사는 믿음의 삶에 '왕도'(royal road)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in cruce salus (/sub cruce salus)

"십자가 안에/아래 구원이 있다."


우리는 다른 데서 구원을, 생명을, 보호를, 위로를, 힘을, 즐거움을, 덕을, 거룩을 찾으려 하고,

그래서 찾지 못해 우울과 절망에 빠지는 것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는 노래한다--

여덟 줄 짜리 기쁨의 찬가(paean)를. 


십자가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찾아오는 팔복을.  


/ 이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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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줄 묵상 2013.08.06 09:45
  • 이렇게 좋은 공간이 있었네요
    많이 읽고 은혜받게되서 감사드립니다

    BlogIcon 박선우 2014.02.01 22:37 신고
  • 우리 영성이 체험에 매달려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됨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진원 2014.02.02 13:23 신고
  • 이진원 님,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체험 자체에 매일 필요도 없고 매여서도 안 됩니다. 한 영성가는 하나님과의 더 깊은 하나됨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체험에 매달리지 말고 체험을 잊으라고까지 말했지요.

    그런데 체험은 기독교 영성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입니다. 그 체험을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해석해 온 교회의 전통에 비추어 바르게 해석하고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BlogIcon 바람연필 2014.02.04 02:34 신고

진정한 영적 성장은

은혜가 주는 위안을 누릴 때가 아니라, 

그런 은혜의 부재를 

겸손과 자기초월과 인내로써 견디어낼 때 일어난다. 


그러므로, 은혜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기도생활이나 다른 경건생활이 시들어지지 않게 하라. 


-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c. 1380–1471), 《그리스도를 본받아》, book 4, ch. 7.


하나님의 임재와 터치를 느끼는 것은 실로 달콤한 경험이다. 기도 중에, 말씀묵상 중에, 예배 중에 그런 경험을 갖게 될 때 흔히 우리는 '은혜 받았다'고 말하곤 한다. 서구 영성사의 전통적 표현으로 말하면, (영성적) '위안'(consolation)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경험이 깊었던 영성가들은 한결같이, 그런 영성적 "위안"은 좋은 것이지만 우리 영성생활이 그런 체험에 매달려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토마스 수사는 정말 우리에게 영적 성장이 일어나는 때는 오히려 그런 '위안'이 없을 때, 흔히 하는 말로 (내적으로) '메마를' 때라고 말한다. 그런 시기, 우리가 겸손하게(humbly), 자기를 잊고서(selflessly), 인내하며(patiently) 견딜 때, 우리 영혼은 진정으로 성장한다. 우리 영혼의 근육이 자란다.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울 때는, 영적으로 고양(高揚)되어 "할렐루야!"를 외칠 때가 아니라,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부르짖게 되는, 더 이상 비참할 수 없는 지경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유일한 희망으로 알아 붙들고 늘어지는 그런 영적 근기(根氣)의 시간이 아닐까? 


그런 시간에 길러지는 겸손과 자기초월과 인내야말로 우리 영혼에 새겨지는 그리스도의 형상일 것이다. / 이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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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본받아》와 다그 함마르셸드

<2013년 3월의 추천고전>

1961년 9월 18일 세계를 놀라게 한 비행기 사고가 있었다. 콩고 내전을 끝낼 평화협상을 중개하러 가던 유엔 사무총장의 비행기가 아프리카 밀림 상공에서 추락, 그를 포함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사고/사건이었다. 사고가 아니라 암살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심증은 충분했다. 그가 이루려고 애쓰는 평화를 달가와 하지 않는 세력이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증은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그 사고현장에서 '발견'된 것이 있었다. 존 F 케네디가 '금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가'라고 평했을 만큼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했으며, 사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만큼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그 사무총장의 '내면세계'였다. 사고현장에서 발견된 그의 서류가방에는 그가 그 살벌한 갈등의 현장 한복판으로 가면서 들고간 두 권의 책이 들어있었다. 한 권은 <성서>였고, 다른 한 권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였다. 


'성직자 같은 정치인'이라고 불렸던 그 제2대 유엔 사무총장의 이름은 다그 함마르셸드(Dag Hammarskjöld: 다그 함마슐드')다. 날마다 기도하며 사무총장직을 수행했다는 그의 가방에서 성경이 발견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의외의 것이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니. 현대 세계의 치열하고 복잡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러 가는 유엔 사무총장의 가방에 중세 수도사의 책이라니. 성경과 더불어 발견된 책이 당대의 유명한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Reinhold Niebuhr)기독교 현실주의와 정치 문제 같은 책이었다면 하나도 이상할 것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니. 


혹, 그 날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공항 서점 같은 데서 어떻게 하다 집어 들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는 '물증'이 있다. 바로 그가 남긴 일기장이다. 그의 유품을 정리하던 지인들은 뉴욕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1920년부터 죽기 며칠 전까지 그가 기록한 일기 노트를 발견하게 된다. 후에 "Vägmärken(Markings)"라는 제명으로 (편집) 출판된 그의 일기는 세계 곳곳의 분쟁 현장을 찾아다니며 "할 수만 있거든" 평화를 이루어내고자 분투했던 한 고귀하고 유능한 활동가의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그 내면세계에서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은 국제문제도 유엔활동도 아니었다. 그의 궁극적 관심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서 서는 일, 즉 요즘 말로 '영성'이었다. Markings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들은 시편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의 저작, 그리고 그리스도를 본받아였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20세기 중반 이후 인기(?)가 급격히 떨어진 영성고전이다. '현대인들'이―'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도―이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이 책이 표방하는 영성을 (현대와 맞지 않게) 지나치게 금욕적, 수도원적, 중세적, 개인구원중심적, 도덕적, 율법적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고전'에 대한 비판적(critical) 자세는 장려할 만한 태도다. 그러나 더 장려되어야할 태도는 고전을 비판적으로 '내 것 삼을'(appropriation) 줄 아는 읽기 능력이다. 함마르셸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정말 '읽었던' 사람이었다. 지인들의 회고에 따르면, 그의 집 침대 옆 탁자에는 늘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놓여 있었고, 그의 일기장이 발견된 곳도 그 탁자 위였다. 


개명한 현대에 더는 맞지 않는 수동적 태도를 장려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책 <그리스도를 본받아> 중에서 함마르셀드가 그의 일기장에 인용하고 있는 한 부분이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뿌리를 박고 견고히 서 있는 이들이니, 교만할 수가 없다. 그들은 자신이 풍성히 받은 모든 좋은 선물을 다 하나님께로 돌리며, 따라서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찾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한다. (II, X, 4.)


이 구절을 또박또박 옮겨쓴 뒤 함마르셸드는 여백에 "1953년 4월 7일"이라고 적어 넣었는데, 그 날짜는 바로 그가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날짜였다. 


초인적 지혜와 인내, 또 용기가 요구되는 평화협상 자리에 가면서 그가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가방에 넣어 가지고 가고 싶어 했던 이유를 이제 우리는 얼마간 짐작한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정말 그 일의 막중함과 어려움, 그리고 그 일에 따르는 유혹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했던 그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간절한 기도에 더욱 공감할 수 있으리라. / 산처럼







그리스도를 본받아

저자
토마스 아 켐피스 지음
출판사
가이드포스트 | 2009-12-09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중세 경건 문학의 최고봉! 삶의 시간대를 초월하는 기독교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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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줄 묵상 2012.11.20 03:12
  • 글뿐만 아니라 함께 올리신 그림과 책도 흥미롭습니다^^ 찾아보니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해골이 여러 번 등장하네요. 아래의 링크에 있는 그림에서 프란시스가 해골을 들고 묵상하고 있는데, 카라바조에게 '해골'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요?

    http://en.wikipedia.org/wiki/Saint_Francis_in_Prayer_(Caravaggio)

    BlogIcon 바람연필 2012.11.20 12:32 신고

곧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라.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말고

죄로부터 도망쳐라. 


-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c. 1380–1471), 

《그리스도를 본받아》, book.1, ch.23.


영성가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고 말한다. 


죽음을 기억(re-member)한다는 것은, 

보기 싫어 멀리 내쫓아버린 죽음을 

다시(re) 나의, 내 삶의 일부(member)로 받아들여 

자주 들여다보며 생각한다는 것일 것이다.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병적인 태도가 아닐까? 

토마스 수사는,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말한다. 


죽음 생각이 싫은 것은, 

죽음이 그저 두렵기 때문이고, 

죽음이 그저 두려운 것은 

죄와 싸우는 삶 ― 경건한 삶, 영적인 삶 ― 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 기억하기'는, 

어떻게든 죽음을 망각하게 만들어

사람을 아무 생각없는 '소비자'로 살다 죽게 만들어 버리려는 

현대사회 ― 세상! ― 음모와 술책에 맞서는

반문화적(counter-cultural) 라이프스타일이요, 영성이다. 


/ 산처럼

Caravaggio(1573-1610), 'San Gerolamo' (Saint Je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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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감기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줄 묵상 2012.10.22 19:28
  • 저도 놀라게 되네요. 일이 하나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그로 인해 나의 이기심을 깨닫게 되니 감사해야겠군요.

    BlogIcon 바람연필 2012.10.23 06:29 신고

많은 이들이 남들 모르게 이기적으로 ― 자기중심적으로 ― 살고 있는데, 

자기 자신도 그걸 모를 때도 많다. 

모든 일이 뜻하는 대로 잘 되고 있을 때는

평화로운 사람처럼 보이지만, 

일이 하나라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그들은 금세 성질을 내거나(irritable) 풀이 죽는다(depressed).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c. 1380–1471), 《그리스도를 본받아》, book.1, ch.14.




요즘 마음이 왠지 울적하여, 

울적한 마음을 베개 삼아 게으르게 뒹굴며 지내다가, 

이 구절을 읽고 화들짝 마음이 깨어난다. 


"아, 내가 좁아터진 나 자신(利己心)속에 틀어박혀 지내고 있구나. 그러니 이렇게 답답하지."


마음이 깨어나니

몸도 깨어나는 듯하다

--감기가 나을 것 같다. /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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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삶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줄 묵상 2012.10.08 14:58

바깥 소리를 듣지 않고

내면에서 들려오는 참(truth)의 음성과 가르침에 귀 기울이는 귀는 복되다. 

바깥 것들을 보지 않고

내면 세계에 주목하는 눈은 복되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c. 1380–1471), 《그리스도를 본받아》, book 4, ch. 1.




'참'된 삶이란 

속이 가득 '차' 있는 삶이다. 


'거짓'된 삶이란

'거죽'만 번지르르한 삶이다. 


어떻게 하면 참된 삶을 살 수 있을까? 


토마스 수사는 

"네 안을 보라"고 말한다.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고 말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지 말자. 


안을 보자. 


안을 볼 줄 알아야, 

위로 비상ascent할 수 있다.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는

밑(地獄)으로 꺼져버릴 지 모른다. /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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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독서를 위한 조언 1 : 매일 일정한 시간에 (존 웨슬리)

한 줄 묵상 2012.10.02 16:00
  • 네, 나이를 먹어갈 수록, 인간에 대해 좀 더 알아갈수록, '좋은 습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BlogIcon 산처럼 2012.10.03 06:07 신고

첫째, 매일 일정 시간에 영적 독서를 하겠다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선언하고, 이것을 지키십시오……”.

 

-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Part of the “Preface” to his Abridgment of Thomas à Kempis’ Treatise of The Imitation of Christ (1735)



 

존 웨슬리는 사람들의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 많은 글을 쓰는 한편, 많은 영성 고전들을 편집하고 출판하는 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긴 고전 중 하나이다. 그는 이 책을 자기 시대 상황에 맞게 창의적으로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이 책의 서문에서 웨슬리는 영적 유익을 도모하기 위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다섯 가지로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비단 이 책뿐 아니라 모든 영성 고전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읽어 달라고 신자들에게 부탁하고 있다.

 

위에 소개된 인용문은 그 다섯 가지 중 첫번 째 조언의 첫 문장이다. 웨슬리는 영적 삶에서 질서(orders)와 규칙(rules)를 중시한다 (그래서 얻게된 별명이 Methodist이다!). 그에 따르면 영적 완성(entire sanctification)까지 이르는 생활, 즉 구원의 여정(the order of salvation)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영적 규칙(rules)를 따르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와 관련해서 어거스틴도 습관의 폭력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향해 굳어진 우리의 욕망, 감정, 기억들은 그릇된 문화와 습관을 만들어 냈고, 그것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감지하고 그것에 따라 사는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의 폭력을 청산하고 구원의 질서를 따라, 새로운 삶의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성화의 길이라고 웨슬리는 보았다. 성령의 도움심과 신앙 공동체의 도움에 자신을 개방하고, 그들과 함께 성서와 신앙 선현들의 영적 고전 읽는 일은 그릇된 습관의 폭력을 이겨내기 위한 실천 중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일 것이다. / 새결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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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결새김

평화로운 사람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줄 묵상 2012.09.30 15:38
  • 인용문 그리고 리플렉션 모두 감사합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되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이런 뜻이 담겨 있었군요!

    새결새김 2012.10.01 03:41 신고

무엇보다 평화 안에 확고히 자리 잡은 사람이 되어라. 
그러면 사람들이 네게서 평화를 얻으리라.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평화로운 사람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c. 1380–1471), 《그리스도를 본받아》, book 2, ch. 3.




나는 '평화로운' 사람인가?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평화로운' 사람인가. 


나는 바르게 사는 사람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평화로운' 사람인가. 


나는 능력있는 사람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평화로운' 사람인가. 


'경건의 능력' 있는 사람, 


만나는 이들에게 '평화'를 선사해줄 수 있는,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에게 쉼을 줄 수 있는, 


성령의 사람.


/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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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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