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임재 안에서 일어나는 기적 (조지 폭스)

한 줄 묵상 2015.08.31 10:08

그들은 침례교인들 중에 질병으로 고생하는 한 여인에 대해 말해주었고, 난 존 러쉬(John Rush)와 같이 그녀를 방문하였다. 우리가 그 집에 들어섰을 때, 많은 이들이 그녀를 보살펴주고 있었고, 그녀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말을 했다. 만약 이 세상에 관해 그녀에게 위로할 말이 있다면, 가까이 와서 그녀에게 말해도 된다고 했다. 나는 우리 주 하나님의 감동에 따라 그녀에게 말하였고, 주님은 그녀를 일으켜 세웠고, 그녀는 나음을 얻었는데, 이 일로 그 마을과 사회가 놀라움에 사로잡혔다.

- 조지 폭스(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in Quaker Spirituality: Selected Writings (Mahwah, NJ: Paulist, 1983), 93.

 

"지금도 기적은 일어나고 있는가?"란 질문에 
크리스챤으로서 얼만큼 자신있게 
대답하고 있는가?

성경에 나열되어 있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기적과 이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마치 고고학적 유물로만 받아들인다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영적 생명력 또한
과거형으로 기술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퀘이커(Quaker)에게 내면의 빛(inner light)은 성령의 
현재적 임재와 역사를 표현하는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현현이다. 
침묵과 관상을 통한 내면의 정화와 깨달음은
단지 수동적 의미에서의 영적 은사와 열매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재적 임재에 동참함으로 동시에 인간은
하나님의 초월적 역사에 동참할 수 있도록
성령님은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셨다. 
기적은 현재적일 때,
우리의 영적 생명력 또한 
오늘 살아 있을 수 있다. 

기적을 바라는 믿음이 아닌,
성령의 현재적 임재에 충만하게 잠겨있을 때,
우리의 이성과 합리적 사고 방식을 
초월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기적을 보고 믿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기적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기적을 바라는 우리의 믿음은 
오늘도 삶에 대한 새로운 소망으로 
우리의 영적 생명력을 일깨워 줄 것이다. 

성령의 임재 안에서 기적은 체험의 대상이다!  

구름위 햇살 이주형

Egbert van Heemskerck the elder (British artist, 1634-35__704) Quaker Meeting with Self Portrait 167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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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며 살아가기

한 줄 묵상 2015.06.26 00:21

신앙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분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chapter 4. A Year in Derby Prison (1650-51)년의 글 중에서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목회자와 구도자들을 찾았던 조지 폭스는 그들과의 많은 대화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안식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논쟁은 그를 더 방황하게 만들고 공허하게 하였다. 그런 과정을 통해 폭스는 다른 무엇, 다른 누구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와 자기 자신 안에서 참된 빛을 발견하고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신앙은 논쟁이나 배움이라기보다는 바라보는 것이다. 탑처럼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다.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고,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만 무언가를 쌓아가기만 하는 것이다.

 

'바라보며 살아가기!' 

오랜 동안 고민해온 신학이 있는 삶, 삶에 녹아진 신학에 대한 길이 이 작은 문구 속에 숨겨져 있는 듯 하다.

 

소리벼리 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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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을 채운 성도들 (조지 폭스)

한 줄 묵상 2014.02.28 19:20

 

"찰스 통치 말년에 감옥을 퀘이커 교도로 가득 채우는 새로운 핍박이 일어났다. 언제 어디서건 비국교도의 비밀 집회 강령이 실시 되기만 하면 친우회 교우들에게는 필연적으로 상당한 고통이 뒤따랐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chapter 20.  (1679-91)년의 글 중에서



웨슬리의 전기에 익숙한 나는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감옥이 텅텅비는 이른바 사회 정의가 구현되고 평화의 시대가 열리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그러나 웨슬리가 태어나기 10여년 전에 삶을 마감했던 조지폭스의 시대는 이와는 반대였다. 조지폭스는 인생의 말년을 쇠약한 육신을 이끌고 감옥을 채우고 있는 자기 공동체의 일원들을 방문하고 본인도 끊임없이 재판을 받으며 위험과 낙망에 빠져있는 믿음의 동료들을 권고하고 격려하면서 보냈다.  

  

감옥에 온통 내 믿음의 동료들로 넘쳐난다면! 

낯설기만 한 이 문구가 갑자기 눈앞에 그려지면서 아찔한 충격이 전해져 온다. 예수의 십자가도 이렇게 이뤄졌겠구나. 바울도 이렇게 말년을 보냈구나!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들도 그렇게 믿음을 지켰구나! 어쩌면 그들이 머문 감옥은 감옥이 되어버린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켜 주님의 보호 아래 두는 하늘의 특별한 은총인지도 모른다. 바울의 서신이,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그리고 폭스의 전기가 결국은 이 감옥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쓴 일기요, 편지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 5:10) 


지금의 그리스도인의 문제는 세상에서 너무 박해를 받지 않기에 이루어지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감옥을 감옥인지 모르고 살기에 천국을 천국인지도 모르고 소망하지도 않는지도 모른다. 


/정승구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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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집이 교회란 말입니까? (조지 폭스)

한 줄 묵상 2013.07.24 08:26

오람에 있는 뾰족집(a steeple-house)에 갔을 때에, 얼마 있자 한 신앙고백자가 와서는 내 가슴을 밀치면서 교회에서 나가라고 명령했다. "쯧쯧 가엾은 사람같으니라고! 뾰족집이 교회란 말이요? 교회란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를 주고 사신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지 폭스(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chapter 5. One Man May Shake the Country for Ten Miles (1651-52)년의 글 중에서

 

한 목사님의 설교집에 있는 '지금의 교회는 하나님의 무덤'이라는 표현을 보고 갑자기 마음이 울컥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는 교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전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능력도 권세도 없는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성도들……. 어쩌면 인정하기 싫어도 지금 우리가 처한 교회의 현실이 이런 무기력함과 무능력함으로 표현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전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적 현실, 비인간적인 사건들의 연속, 그리고 그러한 세계에서 교회는 전혀, 아무런 저항도, 선포도, 예언도 없이, 그저 그들 자신들만의 은혜와, 축복과, 성공만을 외치는 마비된 장소가 되어 버린 것 같기 때문입니다. 

 

조지 폭스는 성직자들이 설교하고 그것을 위해 사람들이 모인 장소를 교회라고 부르지 않고 뾰족집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치 바벨탑틀 쌓는 자들처럼 자기 자신들이 하늘에 다달아 보고자 모인 사람들이 모인 그런 장소 말입니다. 그런데 폭스는 그 뾰족집을 찾아다니며 피하지 않고 성직자들을 향해,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그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빛과 하나님의 은혜로 향하도록 가르칩니다. 때로는 사도바울처럼 모욕을 당해 매를 맞거나 감옥에 갇히기도 하지만 몇몇의 마음이 죽지 않은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회개하기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온 나라를 흔들 수 있다!"

 

갑자기 이 글이 쓰인 Chapter의 제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폭스는 뾰족집에 가서 말씀을 전하면서 자신이 온 나라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온 나라는 그의 말처럼 흔들렸는가? 그리고 지금도, 2013년의 우리가 사는 세상도 한 사람의 믿음이, 열정이, 헌신이 온 나라를 뒤흔들수 있을까?

 

적어도 그런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서 많이 일어났으면 하는 소망을 품어 봅니다. 

/ 소리벼리 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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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교회

한 줄 묵상 2013.06.30 09:30

"나는 사람들을 그들 자신의 길에서 불러내어 새롭고 산 길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라는, 사람들이 만들어서 모이는 교회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교회로,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교회로 인도하라는 …… 명령을 받았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What Did George Fox Teach About Christ? (Gloucester, U.K: Fellowship, 1976), p.29.

 

조지 폭스가 살았던 시대의 교회는 지금의 교회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예배와 성례전, 성직자와 교회의 건물이 그리스도를 대신하고 있었다고 폭스는 말한다. 그래서 폭스는 그러한 외형적인, 상징적인 그리스도가 아니라 살아계신, 우리 안에 거하시는, 구원자 되시고 선생이 되시는 그리스도가 머리 된 교회를 위해 자신이 부르심을 받았다고 밝힌다.

 

지금의 교회는 폭스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고, 그 분이 우리 안에 거하실 뿐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임을 고백한다. 누구도 이러한 고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때로는 그 고백이 진실한 고백인지마음 중심에서 나오는 고백인지 머리가 기웃거려진다살아계신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기보다는 프로그램이 중심이 되는 교회가 아닌지, 성도들이 그리스도가 아닌 목회자나 다른 어떤 것에 기대고 있지는 않는지, 또한 목회자로서 나는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그런 교회로 성도들을 인도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 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폭스의 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앙의 토대와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우리에게 의미있는  질문들을 던진다/ 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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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논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이다. (조지 폭스)

한 줄 묵상 2013.05.24 01:50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전에 계시지 않습니다. 또한 모든 그들의 설교, 세례, 희생들도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진 못합니다. 여러분들의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분만이 당신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분께 순종하십시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chapter 4. A Year in Derby Prison (1650-51)년의 글 중에서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때까지 유대인들의 신앙의 중심은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은 그것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안심을 주는 티켓이었고, 그들이 하나님께 자신들의 신앙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보여 있는 극장이었으며, 그들의 신앙을 보일 있는 무대였습니다. 곳에서 장사하는 장사치들을 몰아내시면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한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일으키리라 하셨습니다.

 

조지 폭스의 조금은 과격하고 극단적인 표현들은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폭스가 그토록 경계하고 회개하기를 원했던 시대의 성직자들처럼 또한 어느덧 교회의 건물 안에 사람들을 몰아넣으려고 지는 않는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로서 나의 말에 순종케 하기를 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말하는 것에 따르는 자들은 거룩하게 것이라는 은근한 협박을 즐기고 있진 않은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일은, 더더욱 우리 목사들이 일은 조지 폭스가 말한 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분께 순종하도록, 그분을 바라보도록 인도하는" 것일 것입니다.  조지 폭스는 당시 교회를 부정하는 듯한 표현으로 인해 감옥살이를 시작합니다. 어쩌면 바른 신앙을 갖는 것은 세상의 감옥에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가 그러했듯, 폭스가 그러했듯,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자들은 감옥에서도 자유할 있습니다. 그렇게 살기 원합니다. / 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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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람이 강해지기를 (조지 폭스)

한 줄 묵상 2013.04.26 18:52

감옥을 향해가고 있을 , 주님의 말씀이 내게 다가왔다. "나의 사랑이 항상 너에게 있고, 너는 나의 사랑 안에 있다." 나는 분의 사랑에 완전히 사로잡혔고, 안에 있는 사람이 굉장히 강건해졌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Autobiography of George Fox, chapter III. 1649


신앙인들의 매일의 삶은 때때로 감옥을 향해 걸어가는약한 자의 모습일 때가 있다. 나를 헤칠 일들 또는 내가 두려워하는 일들이 앞에 놓여있지만 피하지 않고 나아가야 때와 같이, 세상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길을 걸어가야 때가 얼마나 많은가조지 폭스가 신앙적인 이유로 감옥에 들어가게 때에,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 갑작스레 그를 휘감았다. "나의 사랑이 항상 너에게 있고, 너는 나의 사랑 안에 있다."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 그보다 내가 항상 분의 사랑 안에 있다는 말씀, 느낌, 감격은 기독교 역사를 흘러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평안과 능력을 주었다. 그리고 조지폭스가 표현 한대로 ' 사람이 강건' 지는 경험을 하였다오늘도 때로 감옥 같은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동료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머물고 내가 분의 사랑 안에 있음으로  우리 안의 사람이 강해지기를 소망해본다.  / 소리벼리 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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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성령을 통하여" (조지 폭스)

한 줄 묵상 2013.01.25 06:22

주님은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령한 빛으로 깨우침을 받는다는 것을 열어 보이셨고 나는 그 빛이 나에게 두루 비치고 있음을 알았다 …… 나는 빛과 성령을 통하여 인도하심을 받고 가르치심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빛을 통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어둠에서 빛으로 돌이키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능력을 주실 것'임을 나는 알았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Chapter 2, 

The First Years of Ministry (1648-1649) 중에서

                                                  


새벽예배에 자주 나오시는 한 성도님께서 제게 꼭 읽어보라며 몇 권의 책을 선물하셨습니다. 《성령의 불세례를 받으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책 속에는 '성령 받으셔서 능력 받아 목회 성공하세요!'라는 쪽지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성령, 능력, 성공 …… 이런 단어들이 머리 속에서 자꾸만 맴돕니다. 


조지 폭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신앙적인 개념은 '빛과 성령'입니다. 그는 교회의 가르침이나 더 나아가 성경 자체보다도 빛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더 의지하고 신뢰했습니다. 1649년의 일기에서 폭스는 "나는 성경을 하찮게 여기는 마음은 털끝만치도 없다. 성경은 나에게 아주 소중한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나는 언제나 성령 안에 있었고 성령께서는 성경을 나에게 나타내셨다. 내가 나중에 발견한 것은 모두 성경과 일치하는 것들이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폭스는  성령과 빛을 그 어떤 것 보다 강조하고 중시했지만, 그것을 통해 얻는 능력은 다름 아닌 "어둠에서 빛으로 돌이키고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성령과 빛의 열매였고 능력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혹은 목사로서 저도 가끔 어떤 '특별한 능력'을 꿈꿉니다. 병자를 고치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며, 성도들이 질문을 해 오면 어떤 것이라도 척척 대답해 줄 수 있는 그런 특별한 능력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어떤 능력보다 가장 큰 능력은 어두웠던 내가 빛 가운데 거한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누구보다도 성령을 의지했던 폭스는 다시 한번 성령과 빛의 순수한 열매와 능력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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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양심 위에 서는 것 (조지 폭스)

한 줄 묵상 2013.01.11 16:14

주님은 세상에서 고귀하게 여겨지는 직업인 의사와 목사와 법률가들이 지혜와 참된 믿음과 하나님의 법과 공평성에서 벗어나, 의사는 몸을 치료해 주는 척하며, 목사는 영혼을 치료하는 척하며, 판사는 사람들의 재산을 보호해주는 척하고 있음을 보여 주셨다. 목사들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된 믿음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는데 참된 믿음의 비밀은 순결한 양심(a pure consciousness)에 있는 것이었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chapter 2, 

The First Years of Ministry (1648-1649)년의 글 중에서

 

조지폭스의 영성은 당대의 지도자들과 권위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실망과 거기에서 오는 순수한 신앙에로의 회복을 갈구하는 데에 있다. 순수한 신앙은 무엇일까?


순수한 신앙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자신이 서 있어야 하는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폭스는 당시 고귀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여겨지던 의사, 목사, 법률가들이 그 목적에서 떠나 다만 위선을 떨며 자기 욕망과 욕심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참된 믿음은 곧 순결한 양심 위에 서는 것이라 말한다.

 

며칠 전 본 드라마 <학교>의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입시 위주, 수능 위주의 교육에 갇혀 있는 학교에서 기간제 여교사 한 사람이 선생의 본 모습, 교육의 본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학교와 힘겨운 싸움을 한다. 교장이나 동료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은 싸늘하고 조롱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지만 그녀에게 가장 힘든 것은 학생들마저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고 자기들에게 필요하고 성적을 올리는 데 필요한 정보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결국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학교를 그만두려는 그녀에게 정작 수능 위주 교육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한 동료 교사가 그녀를 잡고 소리친다. “여기서 그만 두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내가 되고 싶던 바로 그 교사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싸우는 것은 학교도 학생도 아니고 잘못된 사회의 시스템입니다.”

 

본질과 너무 멀어져 버린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본질에 뿌리 내린 삶과 사회를 꿈꾸는 자들에게 정말 힘든 싸움이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폭스의 글은 본질로 돌아가려는 우리에게 도전과 더불어 소망의 메시지를 준다. 그것은 본질을 갈구하는 우리가 먼저 “순수한 양심” 위에 서야 하며, 그럴 때 우리는 제도와 체계의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순수한 양심의 회복을 통해 제도와 체계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 너무 낭만적 생각에 불과한 것일까? /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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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인 그리스도인 (퀘이커)

한 줄 묵상 2012.12.01 03:51
  • 조지 폭스의 영성을 공부하기 위해서, 퀘이커 예배에도 참여해 보셨군요!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잠잠히 귀를 기울이는 대강절을 보내야겠습니다.

    BlogIcon 바람연필 2012.12.01 05:04 신고

 

당시 폭스는 침묵 관해 가르쳤으며 사람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빛에 대해 증거하고 가운데로 인도하였으며, 각자 마음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의 능력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도록 참고 기다리라고 사람들을 격려했다……그는 모든 사람을 각각의 신조와 예배에 억지로 순종을 하도록 강요받지 않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다. 사람들은 보편적인 원칙, 각자의 내면의 빛을 통해 영적인 연합에 이르게 되는데, 영적인 연합이란일한 원칙에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것이었다.


윌리엄 (William Penn 1644-1728), 《조지 폭스의 일기》의 서문에서 발췌.

 

퀘이커의 예배에 참여해보았다. 보기(See) 위해 참여(Participate) 것이다아무런 찬송도, 어떤 의식도 없이 그냥 그들은 앉아 있었다. 앉아서 마냥, 차분히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그들은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빛의 소리. 그렇게 침묵 속에서 내면에 들려오는 빛의 소리, 성령의 소리를 기다리다가 그것을 경험한 사람은 조용히 일어서서 자기가 들은, 혹은 경험한 것들을 모인 사람들에게 고백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나눔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헤어진다. 그날은 그렇게 그냥 헤어졌다.

 

교회와 사회가 어지럽고, 구도자들이 성직자들과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어떤 영적인 위안과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지폭스의 신앙의 여정은 당시의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극단적인 모습의 퀘이커, 혹은 친우회 (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라고 불리는 신앙운동, 신앙공동체를 일어나게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침묵을 강조하는 그들은 하나님의 영감이 일어날 전신이 떨렸다고 해서 퀘이커, 진동하는 자로 불리웠다.

 

목회를 하며, 또한 영성을 공부하는 한국 개신교 목사로서 그들의 모습은 내가 익숙하고 자라왔던 신앙의 환경의 가장 맞은 편에 있는 듯하다목사로서 성도들을 양육하며 훈련시킬 때에 그들을 독립적인 신앙인으로 서게 했는가? 아니면 점점 무엇엔가 의존하게 만들지는 않았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를 느끼게 했는가? 아니면 두려움을 심어주어 자유로부터의 도피하게 만들었는가? 스스로 반성해 본다.


가톨릭의 타락이 심했을 때에 루터는 하나님과 우리를 중보하는 통로는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성경 뿐임을 외치며 믿는 모든 자가 제사장이라하며 프로테스탄트 운동을 일어나게 했지만, 다시 목사는 교황의 자리에, 교회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통로가 아닌 장벽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퀘이커는 어쩌면 잘못되어져 버린 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이 만들어낸 급진적인 '이단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 그들의 예배, 그들의 기도를 그냥 지나치기에는 2012년을 지나가며 여러 가지 사회적인 비난에 시달리고 있는 교회에 주는 메시지가 참 많다. /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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