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회복 :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을 위한 기도 안내

   대림절을 시작으로 신앙력은 이미 한 해가 시작되었어요. 새해인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시간은 한 해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갑니다. 신앙력과 세상력의 사이에서, 우리는 전자에 의한 고요한 기다림과 출발보다는 후자가 주는 힘에 더 압도되는 것 같아요. 모임도 많고 마음도 분주합니다. 커다란 박스를 꺼내놓고 1231일까지 한 해의 모든 것을 다 쓸어 담고 테잎으로 서둘러 봉인해 버리는 듯합니다. 그리고 11일을 장모가 사위 맞듯 그렇게 가슴만 두근거리는 채 일거리에 쌓여서 정신없이 맞아들입니다. 지난 한 해를 음미할 시간도, 새해를 조용히 가늠해볼 시간도 빼앗긴 채, 우리는 고속도로를 그저 질주합니다. 지나온 길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며 방향과 속도를 조정하는, 즉 성찰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위협하는 이 강력한 힘, 저는 이 힘을 악마적이라고 느낍니다.

    우리의 지난 한 해는 자기 자신의 구체적인 역사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인물, 즉 사건으로 구성된 나 자신의 역사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영혼 구원이라는 말은 나란 사람이 존재하며 경험한 이 구체적 사건이 구원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체없이 막연하고 모호한 것이 아니지요.

    이 세상의 인간 실존은 흙으로 와 흙으로 돌아가는 소멸 속에서 허무감을 끌어안고 삽니다. 이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보상받기 위해 인간은 온갖 것에 집착합니다. 건강, 젊음, 미모, 물질, 권력. 거기다가 신앙인들은 한 걸음 더 하여 교리를 맹신하는 종교 활동과 자기중심적 기복 신앙, 막연한 내세 만능주의를 움켜잡습니다. 그러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은 한 번도 건드려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삶에서 자꾸 건조한 모래 바람이 이는 까닭은 집 지은 기초가 모래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이 두려움으로부터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이끌려 울부짖을 일이 아니라, 그저 차분한 시선으로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근거 없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뿐입니다. 성탄의 메시지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그러하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 온갖 흔적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흔적을 구체적인 내 삶의 역사에서 발견할 때, 우리는 구원과 사랑, 거룩함에 대해 구체적인 감각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일관된 방향과 그 방향을 향해 가속되는 안정된 힘을 느낍니다. 소멸에 관한 막연한 두려움은 근거 없음이 드러납니다. 이 근거 없음에 쫓겨 다녔다는 생각이 들면 어이가 없어지고 다시는 그렇게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고 싶어지지 않습니다.

    대림의 상징인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의 특징을 생각해 보세요. 한 분은 생각하시는 분이었고, 한 분은 광야로 물러나신 분입니다. 성탄의 시기와 한 해의 끝자락을 보내면서, 그것이 시·공의 물러남이든, 마음의 물러남이든, 좀 차분히 물러나고픈 갈증을 많이 느낍니다. 모래바람을 피하고픈 마음이요.

    그래서 지난 1224일에 저는 교회 식구들과 함께 하루 피정을 보냈습니다. 사역한 지 3년 반 만에 하루 피정을 열었으니, 저도 참 느리고 게으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함께 기도하시는 분들께 성탄 선물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맨 날 받기만 하다가 저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지 예전엔 잘 몰랐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는 것은 기쁨의 차원에 관한 말이 분명합니다. 주는 것은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줄 수 있음이 얼마나 기쁜지요! 하나님께서도 성탄에 자기 자신을, 독생하신 성자를 우리에게 주시고 이렇게나 기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해의 끝자락을 저와 함께 하나님 앞에 고요히 앉아 보시겠어요? 하나님 앞에 고요히 앉아 자기 존재를 들여다보는 모습, 저는 그것이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인간다움을 회복해 보시면 어떨까요?




기도 안내


    제가 안내하려는 주제는 한 해 동안 구체적인 내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를 깨닫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속에 머물며 2016년을 가늠해 보기입니다.


* 먼저, 첫 번째 기도 자료를 준비합니다

    한 해 동안 내게 일어난 사건을 기록해 보세요. 예배와 영성 생활, 이웃 사랑(봉사), 교회 봉사, 가정, 직장, , 그리고 사회적인 부분까지 항목을 생각하며 크게 크게 적습니다.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는지,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는지를 생각하면서 적어 보세요. 월별로 적는 것도 도움이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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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할 때는요. 각 사건들을 기억하세요. 공간들, 상황들, 사람들을 떠올려 보세요. 거기서 올라오는 느낌들을 깊게 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 보세요. 성경 말씀은 호세아 111~4절 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2 그러나 내가 부르면 부를수록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짐승을 잡아서 바알 우상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며온갖 신상들에게 향을 피워서 바쳤지만, 3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죽을 고비에서 그들을 살려 주었으나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기도하시면서 다음 요점으로 도움을 삼아 보세요.

1) 내 삶의 방향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깊게 보세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세요? 아니면, 뭔가 잘 못 된 것 같으세요? 이 질문과 더불어, 기도 중에 내면에서부터 올라오는 나의 느낌을 인식하면서, 성경 말씀으로 하나님과 대화(교제)하세요.

2) 한 해 동안의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내 삶을 어떻게 이끄셨는지를 바라보세요. 하나님께서는 내 삶의 각 사건들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셨는지요? 나는 성숙해졌나요? 나는 자유로워졌나요? 나는 고요해졌나요? 사랑이 많아 졌나요? 관대해 졌나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해졌나요? 신앙심이 깊어졌나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라났나요? 부르심에 민감해졌나요? 만일 그러하다면, 하나님께서 구체적인 나의 사건 속에서 나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셨는지 묻고 대화해 보세요. 아버지 같으셨나요? 엄마 같으셨나요? 선생님, 연인, 친구? 봄볕 같으셨나요? 시원한 소나기? 곡식을 익게 만드는 가을 햇살? 사람을 고요하게 만드는 한겨울 깊은 밤?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말씀을 떠올리면서 기도해 보세요.

3) 만일 그러하지 않은 여러 마음들이 든다면, 과연 하나님은 나의 지금 이 느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내가 바라보고, 판단하고, 느낀 이 감정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어떠 하신지를 물어보세요. , ‘나의 느낌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마음을 알려 달라고 하세요. 말씀을 떠올리면서 말씀의 내용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기도임을 기억하세요. 자기 분석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그리고 하나님 당신께 초점이 가 있어야 해요.


다음 사항을 주의하세요. 

1. 기도 주제를 잃어버리거나 분심(잡념)이 올라와서 딴 생각으로 흘러갔어도, 다시 기도하던 지점으로 돌아가시면 되요.

2. 어떤 느낌에 깊이 함몰되거나 압도되어 기도를 놓치지 마세요. 기도는 대화요, 교제예요. 즉 오고 가야 해요. 인내하지 말고, 말씀을 붙들고, 사건을 기억하고, 위의 1),2),3)을 알려고 하나님께 간절히 집중하세요. 그렇다고 욕심을 내라는 것은 아니구요. 하나님께 반응하라는 말이예요. 감정을 견디지 말고. 특히,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거나, 지루하다 거나, 하는 것도 느낌이예요.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세요. 지루함, 당황스러움을 인내하지 마세요.

3. 기도를 아마 여러 번 반복해야 할 거예요. 각 항목으로, 아니면 시간 순서로, 한 해의 사건으로 충분히 기도하세요. 그리고 각 기도를 성찰하시고요.

이렇게, 한해가 점점 하나의 메시지로, 하나의 경험으로 감지가 되기 시작하면, 2016년 새해에 대한 기도로 나아갑니다.


* 두 번째 기도는요, 이렇게 해 보세요.

    성탄절을 보내면서 참 빛이신 주님이 오셨어요. 빛 되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그 빛 아래서 고요한 마음으로 2016년을 떠올려보세요.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뜻, 어떤 말씀을 가지고 다가 오실지를 기대해 보세요. 그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조용히 품고, 또 품으세요. 깊게 깊게 말씀을 고요히 품고 응시합니다. 이번 기도에서는 생각을 펼쳐가거나 느낌을 떠올리지 않도록 하세요. 그저 빈 마음에 말씀을 품고 품어 말씀 자체에서 오는 기운과 힘과 느낌에 고요히 머무세요. 분심이 올라오고 생각이 많아지고 집중이 흩어지면, 다시 말씀을 기억하고 품어 보세요. 그 끝에 내면에서 올라오는 통찰이나 느낌이나 하나님과의 일치된 교제를 거부할 이유는 없어요. 마음 열고 받아들이시면 됩니다말씀은 이사야 4319~ 21절입니다.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전체를 천천히 반복해도 되구요, 기도 중에 품을 말씀 구절을 선택하시면서 기도 시간 내내 품고 계셔도 되어요. 저는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이라는 구절로 이끌림을 받았어요이 글을 쓰는 오늘은 1226일인데, 저도 일주일 내내 첫 번째 기도를 하면서 보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새해엔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반드시 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 속에 머물면서 시작하려구요.

   이 기도 안내가 2015년을 애쓰면서 살아오신 여러분들에게 작은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요, 2016년에 뵈어요. / 해'맑은우리 주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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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귀고 2세에게 배우는,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영성 목회’

6. 귀고(Guigo) 2세에게 배우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통한 ‘영성 목회’



한국교회 안에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는 이제 그리 생경한 단어가 아니다. 라틴어 '렉시오(lectio)'는 ‘모으다’, ‘필요한 것을 선택하다’, ‘눈으로 모아들이다’라는 뜻의 'legere'에서 온 명사형으로, ‘기록된 본문을 눈으로 훑어보아 마음에 모으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렉시오 디비나는 ‘거룩한 말씀을 눈으로 훑어 마음에 모으는 영적훈련’이다. 그러나 아직 많은 교회와 교인들은 렉시오 디비나를 QT(경건시간)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하여 교회 내 대안적 프로그램으로만 이해하고 있으며, 고대 사막의 수도자들에 의해 시작되어 12세기 카르투시오 수도회에서 윤곽을 갖게 된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아, 고전에서 주는 풍성한 깊이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렉시오 디비나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귀고(Guigo) 2세의 책, 《수도승의 사다리》(The Ladder of Monks)를 근거로, 수도자들이 어떻게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통해 하나님과의 일치(Union with God)를 추구했는지를 살펴 볼 것이고, 이러한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하나님 경험이 어떻게 목회 현장에 새로운 힘을 넣어줄 수 있는지 다루고자 한다. 


귀고(Guigo) 2세의 《수도승의 사다리》

엄밀히 말하면, 렉시오 디비나는 12세기 귀고(Guigo) 2세의 것도, 6세기 베네딕트 수도회의 것도, 사막의 구도자들의 것도 아닌 하나님의 것이다. 일찌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으라 이스라엘’이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렉시오 디비나의 형태를 받아들인 다윗은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고백하면서 말씀으로 삶을 조명 받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성경읽기, 즉 머리로만 분석하고 지적 만족을 주는 접근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이 곳에서’ ‘내 것으로’ 삼는 ‘전유화’(appropriation)를 의미하는 '렉시오 디비나'라는 단어는 서방 수도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네딕트 (Benedict of Nursia, 480-547)가 처음 사용하였다. 베네딕트는 그의 책 《베네딕트 규칙서》 48장에서, “게으름은 영혼의 적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은 영성 깊은 독서(lectio divina)뿐만 아니라 육체 노동을 위한 구체적인 시간을 배정해야 한다.”[각주:1]라고 말하며, 'lectio divina'라는 단어를 처음 소개하였다.

그 후 아직 뚜렷한 형태를 갖추지 못했던 렉시오 디비나는 카르투시오회(Carthusian Order)의 귀고 2세에 의해 전형화된 틀을 갖추게 되었다. 귀고 2세의 생애에 대해 뚜렷히 알려진 바는 없다. 프랑스 그르노블 근처에서 1084년 창설된 카르투시오회의 초기 회원 중에 한 사람이었다는 것, 1173년 공동체의 책임자의 자리에 있다가 제 9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는 것, 그리고 1180년 이 소임을 끝낸 후, 1188년 소천했다는 것 정도가 그에 관해 알 수 있는 전부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렉시오 디비나의 전체적인 윤곽이 그의 책 《수도승의 사다리》에 잘 소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귀고 2세는 《수도승의 사다리》에서, 구도자들이 마치 사다리의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가듯,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하나님과의 일치를 향해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에 대해 네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독서(lectio)- 묵상(meditatio)- 기도(oratio)- 관상(contemplatio). 이 네 단계를 자세히 뜯어보자. 그가 말하는 렉시오 디비나는 무엇인가?

먼저, 독서(lectio)는 치밀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것인데 특히 자신의 에너지를 성경에 집중하는 것이다. 음식 먹는 것에 비유하자면, 이 단계는 음식을 입에 넣는 단계이다. 귀고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을 치밀하게 이해하기를 소망하면서, (이 독서의 단계에서는) 영혼이 달콤한 포도송이를 한 입 베어 물고 씹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마치 포도를 포도즙 짜개에 넣듯이 말이다. 이제 이 독서의 단계에서 (잠자고 있는) 지성의 모든 힘을 불러 일깨운다.”[각주:2] 이 단계는 렉시오 디비나의 첫 번째 단계로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그러나 집중해서 성경을 읽는(lectio) 단계이다. 

두 번째로 묵상(meditatio)은 말씀 안에 숨겨진 진리를 찾기 위해 이성의 도움을 받아 행해지는 적극적인 단계이다. 귀고는 이 단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묵상을 치밀하게 할 경우, 묵상은 영혼 밖에만 머물지 않고, 덜 중요한 것에 묶여있지 않고, 오히려 이 묵상으로 인해 내 영혼은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며 마음 안으로 깊이 들어가서 철저히 내 마음을 식별하게 된다.”[각주:3]

성서를 통해 영성을 고취하는 해석학적 방법론을 마련한 샌드라 쉬나이더스(Sandra Schneiders)에 의하면, 이 묵상의 단계는 성경 본문을 내면화하는 단계로써 그것의 의미를 반추하거나 말그대로 묵상하는 단계라고 소개한다. 더 나아가 쉬나이더스는 중세 성서 주석들은 영적 깊이나 풍부한 상상의 폭(넓이)을 가지면서 이 묵상의 단계에 독자를 초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 단계는 성경 본문의 연구를 넘어서 독자가 자신만의 상황(삶과 경험)속에서 본문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소개한다.[각주:4]

세 번째로 기도(oratio)는 묵상에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반응으로서, 독자가 성경 본문 안에서, 혹은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귀고는 이 단계에서 우리의 영혼은 우리 스스로 지성과 감성의 감미로움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단언하면서, 우리의 영혼은 겸손하게 그리고 철저히 기도에 의존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렉시오 디비나는 이 기도의 단계를 통해 절정으로 나아간다.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오 주님, 당신이 성경의 양식을 쪼개주셔야만, 당신이 그 속에서 당신 자신을 내게 보여주십니다. 그 때, 내가 더 당신을 보기 원할수록, 더욱 내가 당신을 보기를 사모할수록, 당신은 내게 성경의 글이 아닌, 그 껍데기의 의미가 아닌, 글 안에 숨겨있는 의미로, 그 깊은 말씀 안으로 나를 인도하십니다.”[각주:5]

마지막으로 관상(contemplatio)은 온 마음과 뜻이 하나님께 올려져서 그분에게 잠겨있게 되어 영원한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앞의 단계의 깊이있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인도하고 그것이 바로 영적 삶의 꼭짓점이자 본질의 영역인 관상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말씀을 연구하는 식의 시도, 즉 무엇인가는 알아가는 모든 시도를 내려놓고 독서와 묵상과 기도의 단계에서 만난 하나님과의 일치를 누리는 단계이다. 귀고는 이 관상의 단계에서 하나님은, 

“아주 달콤하고 감미로운 하늘의 이슬을 흩뿌려주시고, 가장 고귀한 향수로 기름부어주시고, 지치고 지리한 영혼을 회복시켜주시고, 갈급한 심령을 만족시켜주시고, 배고픈 영혼을 먹여주시고, 이 땅의 모든 염려를 잊게하시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새로운 삶으로 이끄신다.”[각주:6]고 설명하고 있다. 쉬나이더스 역시 이 관상의 단계를 “완전히 만개한 꽃으로서, 어떤 그림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과의 연합의 단계”[각주:7]라고 설명한다.   

또한 귀고는 이 네 단계는 분리된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서로의 연관성을 설명하고 있다.

“독서(lectio)는 이 모든 단계의 기본이며, 묵상을 위한 자료들을 제공한다. 묵상(meditatio)은 찾아야 할 것을 더 주의 깊게 고려하면서 숨겨진 보물들을 파내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 보물을 꺼내는 것은 묵상의 힘으로는 안 되며 이것은 기도의 힘이다. 기도(oratio)는 전심으로 기도 자체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이 보물을 간구하는 것인데, 이 보물은 바로 관상의 감미로움(The sweetness of contemplation)이다. 관상(contemplatio)은 이전 세 단계의 상급으로, 하늘의 감미로움으로 갈망하는 영혼을 촉촉이 적시는 것이다.”[각주:8]

이렇게 귀고 2세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렉시오 디비나를 사다리의 이미지로 전형화해서, 각각의 단계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는지 보여주었으며, 많은 구도자들을 말씀으로 초대하여 하나님과의 연합에 이르는 길을 설명한다.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영성목회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이 귀고 2세의 렉시오 디비나를 목회 현장에 적용할 것인가? 성경의 권위가 강한 한국의 개신교는 19, 20세기 유럽과 미국의 대부흥을 거치면서 검증된 다양한 성경 프로그램을 가지고있다. 그 중에 ‘QT’는 제자훈련의 입문단계로 인식되어 개 교회의 성경공부반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귀납법적 성경연구’식 프로그램은 좀더 지적 접근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 갈급함을 해결해주고 있다. 이 얼마나 소중하고 풍성한 영적 유산이란 말인가!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훈련을 받아도 왜 우리는 변하지 않는가! 이 거대한 담론을 제한된 지면에 소개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할 수 없다. 단, 성경의 절대성이 강한 개신교가 이제까지 수많은 성경 프로그램을 해왔지만 삶에 깊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면, 지금까지의 접근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을 아닐까?

렉시오 디비나 소개는 이 지점에 방점을 찍고 한국교회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즉, 성경을 읽되 본문이 주는 의미보다는 독자의 삶의 정황에 더 큰 관심을 갖는 QT식 성경읽기가 아닌, 혹은 성경 본문이 주는 메시지를 삶에 적용하기 보다 본문 자체를 알아가는 정보적 관심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귀납법적 성경연구식 성경 읽기가 아닌, 본문을 철저히 읽고, 묵상하고, 기도로 올려드리며, 기도 중에 하나님과의 연합을 경험해서 그 말씀이 철저히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렉시오 디비나는 영성 목회에 중요한 시작이라 하겠다. 

이렇게 성경을 기반으로 한 영성을 추구하는, 앞서 이미 언급한, 샌드라 쉬나이더스는 우리에게 좀 더 많은 들을거리를 제공한다. 쉬나이더스는 어떻게 크리스찬이 성경을 통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했다. 쉬나이더스는 성경의 역사적, 문학적 방법을 통해 얻은 정보들은 변화를 가져오기가 힘들고 오히려 성경 안으로 들어가서 성경의 세계를 경험하기를 원하는 독자가 그 말씀 안에 자신을 완전히 열었을 때, 하나님과의 연합을 체험하고 그 때, 비로소 변화를 경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각주:9] 즉, 쉬나이더스 역시 귀고처럼 정보적(informative) 접근이 아닌 변화적(transformative) 접근으로 성경을 경험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성서읽기는 백화점식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머물면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렉시오 디비나는 정보 생산에 헐떡이던 모더니즘적 접근에 매여있는 한국교회에 큰 방향을 바꿀 영성 목회의 기초가 될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할례된 성도와 다음 세대는 더 이상 지식을 더하는 제자훈련식 프로그램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심은 ‘변화’에 있다. 내가 변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이 변하느냐? 이런 도전적 토양에서,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영성 목회는 우리의 신앙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건강한 시도가 될 것이다. 말씀 안에 자신을 완전히 열어(lectio, meditatio), 말씀의 세계 안에서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oratio), 그분 안에서 이전에는 맛보지 못한 기쁨을 경험하는 것(contemplatio) 그래서 옛 삶을 벗고 새 삶으로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영성의 진수라 하겠다. 


글쓴이 : 이경희.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 연구원, 새크라멘토 시온장로교회 목사, GTU 기독교 영성학 Ph.D Candidate.

'산책길'은 2015년 한 해 동안 기독교 월간지 <목회와신학>에 '영성 고전에서 배우는 영성 목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목회와신학>의 양해를 얻어 이곳 산책길 팀블로그에서도 매달 글을 게재합니다. 위의 글은 2015년 6월 호에 실린 여섯 번째 글입니다.


  1. 누르시아의 베네딕트 지음, 권혁일·김재현 옮김, 《베네딕트의 규칙서》(KIATS, 2011), 91. [본문으로]
  2. Guigo II, Ladder of Monks and Twelve Meditations, trans. Edmund Colledge, O.S.A. and James Walsh, S.J, (Kalamazoo, MI: Cistercian Publication, 1981), 69. [본문으로]
  3. Ibid., 70. [본문으로]
  4. Sandra Schneiders, “Biblical Spirituality,” Interpretation 56, no. 2 (April 1, 2002): 140. [본문으로]
  5. 주: Guigo II, Ladder of Monks and Twelve Meditations, 73. [본문으로]
  6. Ibid., 74. [본문으로]
  7. Schneiders, “Biblical Spirituality”: 140. [본문으로]
  8. Guigo II, Ladder of Monks and Twelve Meditations, 79. [본문으로]
  9. Schneiders, “Biblical Spirituality”: 13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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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연필

수치와 책망을 겸손히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한 줄 묵상 2015.06.18 00:30

다른 사람이 해 주는 충고와 책망과 꾸지람을 마치 자기가 자신에게 하는 것 같은 인내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종은 복됩니다…. 변명하는 데 빠르지 않고 본인이 범하지 않은 죄에 대해서도 수치와 책망을 겸손되이 참아 견디는 종은 복됩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Francis of Assisi)성 프란치스꼬와 성녀 글라라의 글(분도출판사, 2004), 영적 권고 23.

얼마 전에 지인에게 충고 한마디를 들었다. 아니, 충고라고 하기엔 동정과 호의가 가득한 조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하루 종일 마음이 평화롭지 못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당신이 뭔데', '뭘 안다고' 같은 단어들이 내 안에서 하루 종일 춤을 추었다. 형제 자매들에게 듣는 책망과 충고들은 신앙과 인격을 성숙시키는 좋은 거름이 된다. 그러나 그 거름은 입에 달지 않은데, 나이가 들수록 더 쓰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나이 들수록 더 옹졸해진다는 말이 있다. 그 옹졸함이란 다름 아닌 교만의 결과다. 교만이 사람을 좁게 만든다. 인내심은 줄고, 화가 늘어난다. 듣는 일은 줄고, 말은 많아진다. 웃음은 줄고, 호통은 커진다. 부끄러움은 줄고, 뻔뻔함은 늘어난다. 사죄는 줄고, 변명은 늘어난다. 그래서 나이들수록 더 기도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겸손 훈련'이 절실해진다.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달아날 때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도망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참담할까? 그 때 시므이라는 사람이 위로가 필요한 다윗에게 오히려 저주를 퍼붓는다. 다윗의 신복 아비새는 “이 죽은 개가 어찌 왕을 저주합니까? 제가 머리를 베어오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다윗은 “그냥 나둬, 저게 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야.”라고 답한다. 사람의 저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는 겸손이 얼마나 대단한지, 더 엎드려 겸손을 훈련해야겠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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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은 절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손양원)

한 줄 묵상 2015.06.16 13:21

밤마다 꿈속에 당신의 마음의 근심과 몸이 불안한 것을 보았는데, 아마 근심 걱정에 눌려 병이 된 모양 같습니다. 그러나 근심과 걱정은 절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걱정이랑 병 중에 병이요, 죄 중에 큰 죄가 되는 것이외다.


-손양원 (1902~1950), "부인 정양순 사모에게 보낸 편지 2," 《손양원》(홍성사, 2009), 131.


손양원 목사님이 1942년 10월 14일 옥중에서 쓴 편지의 일부이다. 매달 정해진 날에 면회를 오던 아내가 찾아오지 않자, 그는 밤마다 꿈속에서 불안과 걱정 가운데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사모님의 불안이 목사님께 전해졌다기보다, 목사님 당신의 마음속에 걱정이 자라났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편지에서 아내에게 절대 걱정하지 말라며 당부하는 말씀은, 곧 당신 자신에게 하는 말씀이기도 할 것이다. 손양원 목사님에 의하면, 걱정은 "병 중에 병"이며, "죄 중에 큰 죄"이다. 왜냐하면 걱정 우리의 자비로운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은 기도할 때에 걱정(care)을 하나님께 내어 던지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를 걱정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진정 우리를 돌보시기(God do take care of us) 때문이다. 머튼은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아마도 기도 중에 걱정으로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자신이 직접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 손양원 목사님도, 뛰어난 영성가 토마스 머튼도 모두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인생의 어느 순간 그들에게도 걱정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그 걱정에 휘둘리거나 정복 당하지 않았다. 걱정을 하나님께 내어 던졌다. 혹시 오늘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았을 때 근심과 염려가 먼저 떠오른다면, 또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거나 안절부절하게 된다면,  그 걱정들을 하나하나 주님께 아뢰자. 그분께서 그것을 기쁘게 받아 주실 것이다. / 바람연필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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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두 팔 (잔느귀용)

한 줄 묵상 2015.05.28 23:19

하나님께서는 두 팔이 있어서 당신을 안고 품어 주신다. 한 손은 전능한 보호를 나타내며, 다른 손은 그 분의 완벽한 사랑이다.

 

잔느 귀용(Jeanne Guyon:  c. 1648-1717), 《아가서 강해》, 8장 3절에 대한 주석.

 

아들은 배고플 때 엄마에게 말하면 된다.

학생은 어려운 문제 생길 때 선생님께 말하면 된다.

성도는 힘들 때 목사에게 말하면 된다.

...

목사는 힘들 때 하나님께 기도하면 된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된다.

 



기도하는 데 오늘은 "하나님 아버지…" 하고 부르는데

자꾸 "아빠, 아빠" 하는 소리가 나왔다.

나이 사십에...아빠하며 부르는 기도소리가 우습기도 하지만 마음은 울었다.

"아빠, 아빠" 하는 소리만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다가

그 품에 안겼다.

내가 기댈 수 있는 분.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분.

내가 맘 놓고 울 수 있는 분.

내가 솔직할 수 있는 분

내가

그냥 벌거벗고 다가가 내 모습 다 보여줘도 날 사랑해 주시는 분.

내 아빠,

아빠 하나님….

 

/ 소리벼리 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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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을 참는 힘 (아빌라의 테레사)

한 줄 묵상 2015.05.25 21:00

이런 성과[모욕을 참을 결심과 모욕을 모욕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랑을 얻는 것]를 거두지 못하고 굳세게 참는 힘을 기도로써 얻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악마가 선사하는 착각인 것으로, 우리는 그에게 넘어가서 스스로 가장 존경을 받아야할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c. 1515-1582), 《완덕의 길》에서.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모욕을 참기 힘든 데 있습니다. "나에게 먼저 알리지 않았다. 나만 배제당했다. 내가 모욕당했다. 나를 무시했다. 나는 존재감이 없다." 이런 표현들은 모두 모욕당한다는 느낌입니다. 모욕당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주어집니다. 굳세게 모욕을 참아넘길 수 있는 힘이 기도로 주어진다는 것은 큰 위로입니다. 그런데 그냥 굳세게 참는 게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일치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가 됩니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면서 아들이 받아낸 모욕에 비하면 내가 당하는 것은 어떤 것도 모욕으로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그 사랑 안에 머무는 힘을 잃어버리면 내가 존경받을 구석이 있는 사람인 양 생각됩니다. 내가 가진 직분, 내가 가진 사역의 역할, 내가 가진 나이와 경륜이 나의 존경의 이유가 되어버립니다. 예수의 데레사는 그것이 은혜의 선물이 아닌 사단의 유혹임을 분명히 경고합니다. 허겁지겁 기도해가며 지내고 있는 요즘, 가끔씩 주변사람에게 날이 선 목소리가 되어가는 것을 자각하는 요즘, 굳세게 참는 힘을 얻을 때까지 한 자락의 기도라도 마음을 다해 올려드려야겠습니다. / 진정한 열망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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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시오 디비나의 ‘기도’ (귀고 2세)

한 줄 묵상 2015.05.17 09:47

오 주님, 주님이 성경의 양식을 쪼개 주실 때, 그 말씀에서 주님 자신을 제게 보여주십니다. 그 때 제가 주님 보기를 더 원할수록, 주님을 보기를 더욱 사모할수록, 주님은 제게 성경의 글이 아닌, 그 껍데기의 의미가 아닌, 글 안에 숨겨있는 의미로, 그 깊은 말씀 안으로 저를 인도하십니다.


- Guigo II(?-1188), Ladder of Monks and Twelve Meditations, trans. Edmund Colledge and James Walsh (Kalamazoo, MI: Cistercian Publication, 1981), 69.


귀고 2세는 수도승의 사다리에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읽기(Lectio), 묵상(Meditatio), 기도(Oratio), 관상(Contemplatio) 네 단계로 정형화해서 알려 준다. 그 중 어느 단계라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기도(Oratio)의 시간은 읽기를 통해 얻은 정보적 앎이, ‘묵상의 단계를 통해 뿌리내리고, ‘관상’의 단계에서 꽃피기 위해, 꼭 거쳐야하는 숙성의 시간이다.


기도의 시간은 성서의 문자가 정보를 감싸고 있는 포장지가 아니라 나의 숨은 존재를 깨워주는 생명임을 더 간절히 알아가게 한다. 기도의 시간은 나를 하나님과 관상의 세계 속으로 이끌어, 하나님과 나의 구분이 없는 연합의 신비를 경험하게 한다. 그 속에서 나의 지리하고 곤한 영혼은 새 의미 앞으로 나아가며, 척박한 영혼은 하늘에서 흩뿌려 주시는 잔잔한 은혜를 맛보게 된다.


오라티오! 

"주님, 앎을 바꾸어, 주님과 만남의 경험을 통해, 변화로 나아가게 하소서!"/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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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다시 괴로워지는 마음 (하나님 임재 연습)

한 줄 묵상 2014.12.11 02:31

내가 더 우선적으로 여기는 것은 가능한 한 자주 그분과 함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으로 물러나 앉아 있는 것이라네. 그분과 함께 거기 거할 때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네. 하지만 일단 그분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기만 하면 나는 금방 괴로워진다네.

-로렌스 형제(1605-1691)지음, 윤종석 옮김,하나님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서울: 두란노, 2000), 41.


미국 미용실 서비스는 한국과 비교하면 형편이 없다. 그래서 종종 한국의 미용실이 그립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다 된다. 머리는 단정하게 깍이고, 알아서 머리를 감겨주며, 젖은 머리를 정성스럽게 말려주고, 평소에는 꿈도 못 꿀 헤어스타일로 멋을 내준다. 가만히 눈을 감고 즐거운 상상을 하거나, 피로에 깜빡 졸다 보면 어느새 모든 것이 다 끝나 있다.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우리는 종종 기도의 자리에서 그런 서비스를 받기 원하는 것 같다. 가만 앉아 있기만 하면 슬픔과 괴로움이 평안으로 채워지는 마법 같은 서비스 말이다. 그래서 기도의 자리로 더 자주 나오라는 권고를 듣는 사람은 많지만,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무는 ‘연습’을 지도 받은 이는 드물다. 

평생을 충성스런 평신도 수사로 살았던 로렌스는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 자매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님은 자매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계시는 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님이 아무리 가까이 계셔도 주의 임재는 저절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다. “밥을 먹을 때나 허드렛일을 할 때에도 심령을 그분께 올려 드리십시오.”라는 그의 충고처럼 하찮아 보이는 일을 할 때조차도 우리의 심령을 주님께 올려드리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흔히 ‘의지’는 ‘은총’을 흐리는 불순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의지' 또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이 아니던가! 괴로운 마음으로 털썩 기도의 자리에 앉는다고 저절로 주의 임재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줄 기도자는 주변에 즐비하다. "그분과 함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으로 물러나" 앉는 일은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 없는 기도로는 주님과 함께 머물지 못한다. '금방 다시 괴로워지는 마음'이 그 증거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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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기도, 일상 중에 녹여 내기 (2) : 매일의 기도

기타/영성 관련글 2014.10.12 13:36

이 글은 높은뜻 정의교회 '기도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입니다. 침묵기도를 일상 속에 뿌리내리는 데에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며 세 번에 걸쳐서 게재합니다. (1) 기도와 항해, (2) 매일의 기도, (3) 삶을 하나로 묶기/ 주선영



침묵 기도, 일상 중에 녹여 내기

(2) 매일 기도



앞선 글에서는 우리의 삶은 배가 항구를 떠나 하나님이라는 목적지로 향하는 항해와 같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눈을 뜨자 마자 이부자리에 앉아서 5-10분 정도 이렇게 자기 삶의 방향즉 목적지에 맞게 배의 항로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시기를 권해드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매일의 기도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언제 : 삶의 리듬과 갈망

    매일 아침, '배의 항로'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면서 기도를 언제어디서무엇으로 할 것인지에 인도함을 받습니다자기 나름의 시간 계획을 세워놓고 그것을 해야만 한다고 강압하고지키지 못하면 죄책감이나 자기혐오에 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차라리 자기 스스로 얼마나 원하는지를 더욱 기억하십시오원하는 것에 솔직하십시오그리고 몸하루 일정마음 상태 등을 봐가면서오늘 하루의 삶에서 언제 기도하는 것이 가장 최선인가를성령과 함께 생각하고 함께 결정하고 함께 기도를 시작하십시오우리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리듬이 있기 때문에자기에게 적합한 시간은 일상에서 곧 정해집니다기도 자리가 정해지지 않는 것은 원하는 힘을 덜 믿기 때문입니다기억하십시오우리가 원하는 것보다성령께서 더욱 강력하게 우리의 마음과 마음을 맞대고 기도하길 원하십니다. ‘원한다는 것을 강하게 믿어보세요믿음이 없으면하나님께 청해보세요.


2. 어떻게 : 침묵과 고독

    기독교 영성 전통에서 하나님과 깊은 사귐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환경이 침묵과 고독입니다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은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시고인간이 그 멀리 계신 하나님께 열심히 노력해서 도달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이것은 역설입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은 하나님이 나를 추구하고 계셨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고, ‘하나님과 일치는 분리된 둘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이미 너무나 하나여서 분리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함을 자각하는 것입니다이것은 깊은 고요내적인 침묵이 형성되면 그저 저절로 발견됩니다세상의 온갖 자극에 너무 시달린 감각으로 이런 것을 가슴 깊은 곳에서 느낀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침묵기도가 일상 속에 잘 녹아내리지 않는 이유는 개별적 차원의 기도 숙달에 있지 않습니다그것은 보다 더 큰 환경인 침묵과 물러남의 가치에 얼마나 눈을 뜨느냐에 있습니다침묵하는 까닭은 하나님께만 말하기 위함이고물러나는 까닭은 하나님하고만 머물고 싶다는 갈망의 형식적 표현입니다그러니 혼자 있는 시·공간을 불안해하지 마십시오침묵 속에서 혼자 조용히 머물러 보십시오사방이 하나님으로 가득하다는 것이 곧 느껴지실 것입니다아주 따뜻하고 평화롭다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되실 것입니다.


3. 무엇을?

    하나님을 추구하고하나님과 사랑 속에 머물고 싶어지려면혹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라면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그것은 일단 하나님 그분 자체가 함께 머물기에 참 좋아야 합니다만일 하나님 앞에 고요히 머무는데우리가 그 하나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몰라서 두렵다면 어떨까요하나님과의 관계가 권위적 관계로 경색되어 있어서자발적으로 편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분으로 느껴진다면 어떨까요혹은 하나님께 속마음이 들킬까봐 전전긍긍하거나아무리 기도해도 꿈적도 않는 경험이 반복되어 있으면 어떨까요혹은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한 것은 무조건적으로 응답하셔야만 하는, 곧 우리 비위를 맞춰주는 하나님으로 느껴진다면 어떨까요?


a. 성경

    이 모든 예는 온전하신 하나님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신비이시고 전부이신 하나님을 오해하는 경우입니다이런 경우는 자기-경험의 세계 안에 하나님을 가둬두고 있는 것이고하나님을 오해한즉 자기-결핍을 투사한 하나님의 왜곡된 이미지를 붙들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왜곡하여 이해하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우리 방식대로가 아니라예수 그리스도의 방식대로 이해해야 합니다그래서 침묵기도의 기본 자료는 언제나 성육하신 말씀이신 성경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의 삶을 보여주는 복음서로 기도하는 것이 중심입니다말씀을 통해 자기-세계자기-이해를 벗어날 때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계속 경험하게 됩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각성될수록항해에 대해 확신과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b. 그 자체

    자, 그런데 오늘의 항해일지에는 말씀으로 기도하기보다 주요한 사건이슈선택 문제 등을 놓고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그러면삶 자체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침묵으로 머물면서 기도합니다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사건에서 마음이 불편한 경우죄책감이 느껴지거나 하는 경우도 좋습니다구체적으로 선택하거나 결정해야 할 사안들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이럴 때는 어떻게 할까요?


① 첫째, 묵상기도나 복음관상 때처럼 기도 준비를 합니다.


② 둘째, 기도할 내용을 요점으로 만듭니다

예) ○○와의 관계에서 불안하고 화가 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하나님은 뭐라고 하실까?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새롭게 볼 수 있을까?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무엇을 교훈하셨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함께 하셨는가?


③ 셋째, 하나님께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립니다성령의 도움을 청하면서천천히 기도를 시작합니다


④ 넷째, 기도할 요점을 마음에 깊게 품으면서떠올려야 할 것들은 기억으로 떠올리면서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집중합니다감정이나 마음을 인지하면서하나님께서 요점으로 잡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집중합니다.


⑤ 다섯째, 처음에는 분심(산만한 마음)이 많고 어려울 것 같지만묵상기도가 익숙한 사람들은 삶으로 기도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삶 자체로 기도하면우리의 생각과 많이 다른 하나님의 넓고 큰 마음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이것은 삶 그 자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기도와 삶을 묶어주는데 도움이 됩니다.


⑥ 여섯째, 정해진 기도시간(40~60)이 다하면 기도를 마칩니다기도를 통해 은총을 받았 다면자연스럽게 찬미와 감사로 이어집니다그렇지 않았다면기도는 좀 더 반복을 해야 합니다.


⑦ 일곱째, 이 기도도 기도반추를 합니다.


c. 마음그 자체.

    몸이 아플 때나지쳤을 때진짜 좀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또 마음이 힘들어묵상이나 생각 자체가 귀찮을 때가 있습니다하나님의 위로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이 필요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이럴 때 진짜 조용히 하나님 앞에 머무시면 됩니다.


① 첫째, 기도를 준비합니다시간자세장소 등.


② 둘째, 기도 요점을 확인합니다예를 들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몸마음을 품어 준다." 이때 성경 구절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③ 셋째, 하나님께 원하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예를 들어, "몸이 쉼을 얻고 새 힘을 얻게 하소서마음의 상처를 위로하소서."


④ 넷째, 성령의 도움을 청하면서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찬 마음으로 몸이나 마음을 품습니다분심은 흘리고다시 집중합니다.


⑤ 다섯째, 타이머가 울리면자발적인 기도로 주님과 대화하면서 기도를 마무리 합니다.


⑥ 여섯째, 기도를 반추하여적습니다.


d. 중보 기도

    개인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의 일하심과 하나님의 뜻을 살펴가면서혹은 삶 자체로 기도해 나가기 때문에 점차로 간구하는 것들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개인적 차원에서특히 공동체적인 차원에서우리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벗어나는 것들이 있습니다탄식과 한숨이 나오는 것들, 막막한 것들이 있습니다이때는 진정으로 중보기도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① 첫째, 기도를 준비합니다.


② 둘째, 기도 요점을 확인합니다한 시간 동안 기도 속에 머물 내용주제입니다.예를 들어, "에볼라로 공포에 떨고 있는 아프리카를 보살펴 주십시오바이러스가 안정화되고치료약이 개발되게 해 주십시오."


③ 셋째, 성령께 도움을 구하면서하나님께 청하는 기도를 시작합니다하나님의 임재의 현존을 자각합니다하나님께 기도요점에 대한 갈망과 안타까움 등의 마음을 올려드립니다마음에 현존하신 하나님을 향해기도할 주제를 모읍니다간간히 침묵 중에 말로 드리기도 하지만더 중요한 것은 기도할 주제에 대한 마음의식을 집중하여 하나님께 모아드리는 것입니다.


④ 넷째, 타이머가 울리면자발적인 기도로 주님과 대화하면서 기도를 마무리 합니다.


⑤ 다섯째기도를 반추하여적습니다.



여기까지 매일의 기도 실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마지막으로 기도와 삶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 것인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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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연필

잘못된 영성 훈련의 병증 (귀고 2세의 <수도승의 사다리>)

한 줄 묵상 2014.09.12 12:19
  • 대부분의 영성훈련이 일회성의 깨달음으로 그치기 때문에 아쉽지요~^
    지속하는 것이 중요한데~~

    BlogIcon 이기연 2014.09.12 18:31 신고

묵상 없는 독서는 건조하며 독서 없는 묵상은 오류에 빠지기 쉽고, 나아가 묵상 없는 기도는 미지근하며 기도 없는 묵상은 결실이 없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습니다. 정성들인 기도는 관상을 얻게 해주며, 기도 없는 관상의 선물은 드물고 기적에 가까운 것이라 하겠습니다.


- 귀고 2세(Guigo II: ?-1188), <관상 생활에 대해 쓴 편지>, 

엔조 비앙키 지음, 이연학 옮김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왜관: 분도, 2010), 154-55에서.



귀고 2세는 12세기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원장을 지낸 분이다. 카르투지오 수도회는 베네딕트 규칙서를 엄격하게 지키기 위해 11세기에 설립된 수도회이다. 몇 년 전 개봉되어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는 다큐멘터리 <위대한 침묵>은 이 수도회의 일상을 다룬 것이다. 봉쇄 수도원의 깊은 침묵이 분주한 현대인들의 영적 갈망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


귀고 2세가 쓴 <관상 생활에 대해 쓴 편지(The Letter on the Contemplative Life)>는 우리에게 <수도승의 사다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원조 큐티(QT)라고 할 수 있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유명한 영성 고전이다. 귀고 2세는 렉시오 디비나를 네 단계, 즉 독서, 묵상, 기도, 관상으로 설명한다. 렉시오 디비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각각의 단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각각의 단계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독서와 묵상이, 묵상과 기도가, 그리고 기도와 관상이 어떻게 체험적으로 흘러가는지를 알면 영성 생활에서 어느 한 요소도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빨리빨리 읽기만 하고 묵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성경은 읽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만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묵상은 하지 않고 기도부터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묵상만 하고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기도를 마음을 다해 하지 않고 해야할 일을 해치우듯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기도의 체험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관상의 경험을 자신의 영적 경험에서 아예 배제시켜버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영성 생활에서 이런 병증을 습관화시킨 사람들은 기도에 결코 맛들일 수 없다. 성경을 읽다가 기도로 흘러가는 것이 기독교 영성훈련의 기본이다. 위에 인용한 귀고 2세의 말은 그런 점에서 우리의 영성 훈련에 병증은 없는지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 이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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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우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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