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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생활/수필 한 조각

병상 묵상1. 함께 하는 것이 사랑이다.


병상 묵상 1. 

함께 하는 것사랑이다.



     아버지가 몇 개월의 투병생활을 마치셨다. 아직 몸을 추슬러야 하는 과정이 남았지만, 두 종류의 암을 이겨내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가슴 벅차다. 아버지는 병마와 싸워 이기신 것만이 아니라 투병과정을 통해 내게 많은 선물을 주셨다. 


     아버지가 혈액암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지난 12월은 가족 모두에게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었다. 여러 번 고향으로 가서 담당의와 상의하면서 6차례 이상의 항암치료를 본가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어려움은 아버지의 간병이었다. 항암치료는 3~4일의 입원이면 가능하지만, 항암을 마치고 돌아온 환자가 다시 항암할 때까지 돌보는 3주 정도의 기간을 어떻게 지내실지가 고민이었다. 건강도 좋지 않은 어머니가 간병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큰 짐이 되었다. 


     간병인도 구해보고, 요양병원도 알아보고서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암진단을 받고 치료에 대한 모든 것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아버지에게 “내가 비용과 간병을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마시라.”고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아프고 죄송했다. 나는 어머니를 염려해서 요양병원에 머물면서 항암치료를 해 가시길 권했지만 아버지는 끝내 집에 머물기를 원하셨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교착에 빠졌을 때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어머니는 당신이 간병을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라면 아버지의 아내로서 끝까지 주어진 길을 가고 싶다고 했다. 당신이 더 아프게 된다 해도 충실한 아내로 살고 싶다 말씀하셨다.


     친구 목사의 도움으로 아버지가 지낼 방을 정리하고 환자를 위한 침대를 들이고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모든 치료를 준비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어머니가 했던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아... 나는 아버지를 위해 수고했지만 결국은 내 집으로 떠나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구나.” 부종 때문에 걷기 어렵고, 통증으로 잠 못 이루고, 배변과 소화가 어려워 식사도 고통스럽고, 말할 힘조차 없던 시간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했다.


     지난 명절 고향에 내려갔을 때, 통증으로 아파하시는 아버지를 마사지 하다가 뼈밖에 남지않은 아버지의 어깨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전화로 말씀하신 ‘아버지가 많이 말랐다.’가 무엇인지를 나는 그 순간 몸으로 깨달았다. 나는 언어로 듣고, 나는 내 생각으로 알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숨으로 듣고, 어머니는 있는 그대로 알았다. 함께 있는 자만이 아는 고통, 함께 사는 자만이 아는 지식이 어머니에게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왜 하나님이 그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려는 지 알았다. 왜 예수를 인간이 되시게 하심으로써 우리와 함께 하시는지, 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지를 조금 알 것 같다. 우리와 함께 하고 싶으신 것이다. 우리의 죄가 당신을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지와 상관없이 함께 있고 싶으신 것이다. 우리의 의도와 생각과 선택의 순간들에 함께 있고 싶으신 것이다. 그래서 네가 너와 함께 한다는 하나님의 선언은 놀랄만한 사랑의 고백이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함께 함보다 벗어남을 우선시한다. 고통을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함께 함이 고통 속에서 줄 수 있는 더 큰 사랑일지도 모른다. / 진정한 열망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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