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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고전의 벗들 (2차 자료)

영성을 살다: 기독교 영성회복의 일곱 가지 길





"전통주의는 산 자들의 죽은 신앙이고, 전통은 죽은 자들의 살아있는 신앙이다" - 자로슬라브 펠리칸(Jaroslav Pelican)


이 책은 독자를 “기독교 영성 전통”이라는 고색(古色) 창연하고 오색(五色) 찬란한 세계로 안내한다. 이 드넓은 세계에 들어가보면,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최초의 기독신학자" 오리게네스가 이교의 교양인들에게 "아파테이아"론을 설파하고 있는가 하면, 20세기 미국의 트라피스트 수도사 토마스 머튼이 방콕을 방문하여 동서양 영성의 만남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골교회 목사 조지 허버트가 성례를 행하듯 시를 쓰고 있는가 하면, 아빌라의 테레사나 노르위치의 줄리안 같은 여성 영성가들이 남성 신학자들이 헤아리지 못한 신성과 인성의 깊이를 헤아리며 성육신의 신비를 관상하고 있다.


왜 기독교 영성 전통을 공부해야 하는가? 책의 첫머리에 인용된 가다머의 말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전통 안에 서 있다는 것, 그것은 지식을 얻을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다시 말해, 전통에 굳게 발 딛고 서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지성의 영역에서뿐 아니라 특히 영성의 영역에서 더욱 맞는 말이다. <영적 훈련과 성장>이라는 기념비적 저서를 통해 현대 그리스도인들을 영성훈련의 도량(道場)으로 이끌어 내었던 리차드 포스터가 이번에는 자신의 친구와 더불어, 그런 기독교 영성훈련들을 낳은 어머니(母體)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 영성의 신학적 역사적 "전통"에 대해 개괄하는 책을 썼다. 더더구나 이 책은 두 사람이 스승과 제자로서 맺었던 우정의 산물이자, 공동 연구자로서의 동역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이 책은 질서, 여정, 앎, 관계, 체험, 관상/행동, 등반이라는 일곱 가지 키워드를 통해 기독교 영성의 다양한 면모를 알차게 개관해주는데, 특별히, 각 영성가에 대한 소개 뒤, 리차드 포스터가 성숙한 시각을 담아 겸손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반추와 반응'은, 전통을 나름대로 소화하여 “우리 것 삼는다”(appropriation)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일례로, 포스터는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 회심 뒤 그가 동거녀를 버리지 않고 결혼해 함께 사랑하며 살았더라면 더 좋은 모델이 되지 않았을까라며, 그리스도께서 그를 성(性)으로부터 "좀 지나치게" 자유케 하신 것 같다고 말하며, 독자들에게 눈을 찡긋한다. 서구 영성사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던 그 저명한 주교의 영성에 대한 오늘의 재해석의 일면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 책은 우리 앞서 하나님의 영을 들이쉬고 내쉬며 살았던 분들의 숨결을 느껴보라는 초대다. "영"("루아흐", "프뉴마")이라는 말이 "숨"을 뜻한다면, 영성이란 그 숨의 결, 즉 "숨결"을 뜻할 터이다. 칼뱅과 위(僞)디오니시우스, 누르시아의 베네딕트와 조지 폭스는, 했던 "말"(신학)에 있어서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숨결"에 있어서는 서로 통하지 않았을까? 모두, 하나님의 숨, 곧 성령을 호흡했던 분들이니 말이다. 먼저 영성의 길을 걸어간 이들의 숨결을 가까이서 느껴보는 것보다 지금 우리의 거칠어진 숨결을 골라주는 것이 또 있을까? 일독 후 우리의 숨이 깊어졌다면, 이는 그분들의 말이 아니라 “숨”이 우리에게 와 닿았기 때문이리라.


이종태


IVP 북뉴스 2009년 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