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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묵상

기억과 생각 너머에 (무지의 구름)

마치 하나님과 당신 사이를 압박하는 기억들과 생각들을 전혀 몰랐던 것처럼, 당신안에서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십시오. 그 기억들과 생각들 너머에 또 다른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그 무엇이 무지의 구름에 가려져 계신 하나님이시라면, 당신의 기도는 점차 가벼워질 것입니다.

- 작자 미상, The Cloud of Unknowning.(Mahwah, New Jersey: Paulist Press),  181.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오히려 하나님 임재 안에 거하는데 걸림돌이 될 때가 있다. 우리의 기억과 생각들이 일그러진 자아와 그릇된 욕망을 담아 내게 되면,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우리의 어떠한 시도와 기도도 공허한 울림에 그칠 수 있다. 기억은 과거 경험에 대한 우리의 자의적 해석일 수 있으며, 생각은 오늘 우리 욕망이 길러내는 허상일 수 있다. 그 해석과 허상 속에 갇혀 하나님을 찾으려 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자칫 우리의 이기적이고 그릇된 욕망을 담아내는 분출구밖에 되지 못한다.  


14세기 후반 영국의 기독교 영성가인 《무지의 구름》 저자는, 주님의 임재 안에 거하기 위해서 우리의 지식과 생각들이 인도하는 허상과 욕망의 세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언어와 신학적 지식이 인도하는 이성적, 인식적 사고 너머 우리의 실존과 존재의 근원이 되는 영혼 한가운데로 들어설 때, 주님의 임재로 나아갈 수 있다. 침묵과 고독의 한가운데에서 진실함과 정직함으로 하나님을 갈망한다면, 무지의 구름에 가려져 계셨던 주님께서 조금씩 우리의 기도를 도우신다는 것이다. 


사변적이고 논리적인 토론과 설득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갈망이 우리의 영혼을 주님의 임재로 인도한다. 그 갈망은 곧 사랑이며, 그 사랑만이 주님과 교제하는 유일한 길이 된다. 그 곳에서 우리는 주님의 약속이 우리 영혼에 이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져왔던 우리의 영혼이 쉼을 얻고, 그 짐이 가벼워지는 은혜를 맛보게 된다. / 이주형